인터뷰 공감1

한식 기반 파인다이닝
횟집의 품격

부산 수정궁 이승욱 대표

특별한 날에 생각나는 식당, 귀한 만남이 있을 때 찾고 싶은 식당은 무엇이 다를까? 부산 광안리 바닷가를 한눈에 품은 횟집 ‘수정궁’은 늘 한발 앞서 트렌드를 이끌었다. 1980년, 1대 창업주 이창식, 함차순 부부는 내부 수족관 설치와 저울을 이용한 정가·정량 판매 등 기존의 횟집과는 다른 분위기와 운영방식으로 화제를 모았다. 대를 이은 이승욱 대표는 한식 기반의 파인다이닝 횟집으로 또 한 번 변신을 시도하며 수정궁을 부산을 대표하는 고급 횟집으로 한 단계 더 성장시켰다.

부산에서 손꼽히는 최고 횟집

“오래된 가게가 망하는 이유로 무리한 개·보수를 꼽아요. 2대째 접어들면서 필요한 설비투자를 하다 보면 비용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가격이 오르면 고객들이 변했다며 외면하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꼭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있어요. 원칙을 고수하며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답이 있겠죠.”

오랜 시간을 쌓아온 가게에 변화는 득일까, 독일까? 이승욱 대표는 고민 끝에 과감한 변화를 택했다. ‘고급 횟집은 일본식’이라는 공식을 깨고 한식을 기반으로 자연산 활어회와 우리 땅에서 난 제철 재료로 우리 입맛에 맞는 한 상을 정갈하게 차려낸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최고의 재료, 최고의 요리사와 함께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 덕분에 수정궁은 예나 지금이나 부산 최고의 횟집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과감한 변화, 백년가게의 토대죠

수정궁이 광안리에 자리 잡은 지 벌서 43년째입니다. 가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원래 아버님은 섬유가공 사업을 하셨고, 어머니는 의류 판매업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1979년 울 쇼크가 터지고 섬유 산업이 어려워지자 사업을 접고 1980년 7월, 광안리에 횟집을 열었습니다. 아버지가 미식가셨어요. 또 사업을 하시며 일본 등 해외를 자주 오가면서 세련된 감각도 지니게 되었고요. 당시 가게에 실내 수족관을 설치하고, 룸 형태를 도입하는 등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였는데요. 주변에서는 식당을 모르는 사람이 이상한 짓을 한다, 곧 문을 닫겠다는 등 우려하는 시선이 많았다고 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식당 운영 경험이 없었기에 새로운 시도가 가능했고, 그게 오히려 특별함으로 다가선 것 같아요. 고객들이 발길을 이어주셨으니까요. ‘수정궁’이라는 이름은 부산 수정동에 살아서 동네에 애정을 담에 붙인 이름이에요. 용왕이 사는 궁의 이름이기도 하고요.

그 차별화 전략이 통한 것일까요? 수정궁은 부산에서 손꼽히는 횟집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비결이 뭘까요?

당시 대부분의 횟집에는 흥정 문화가 있었어요. 그게 정이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서로 믿지 못하는 부작용도 따라 왔습니다. 부모님은 과감하게 ‘kg 당 얼마’로 정가제를 도입했어요. 그 부분이 오히려 신뢰를 높였습니다. 물론 신선한 횟감은 기본이고, 어머니가 살가운 성격으로 운영도 잘하셨고요.

대표님은 어떤 계기로 2대 경영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처음 열었던 가게는 태풍이 닥치면 1층으로 파도가 밀려올 정도로 바다와 가까웠는데 앞바다가 매립되면서 바다와 멀어지게 되었어요. 26년 동안 한 자리에서 운영하다 가게가 낡기도 하고, 바다 전망도 누릴 수 없어 2006년 지금의 자리로 신축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준비 과정에서 제가 참여하게 됐는데요. 2년 반 정도 설계하고 시공하는 과정에서 주방장이자 매니저인 어머니와 의견이 다른 부분이 많았어요. 조율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면 차라리 네가 직접 운영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하셔서 자연스럽게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26년을 이어온 가게, 이미 인정받은 가게를 완전히 바꾼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떤 의도를 가진 변화였나요?

부산에서 손꼽히는 횟집이었음에도 메뉴의 단조로움이나 체계적인 서비스의 부재는 아쉬움으로 남았어요. 부산의 횟집은 크게 회센터 중심의 저가 시장과 일식당의 분위기를 가져온 고급식당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그런데 고급 횟집의 경우 일식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부분이 많았어요. 이에 오히려 한식을 기반으로 한 정갈한 고급 횟집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일식의 계란찜을 전복죽으로, 나베요리를 조개탕이나 매생이국으로, 조림도 간장 기반이 아니라 고춧가루를 더한 매콤한 한식 조리법으로 바꾼 것이죠. 인테리어 역시 현대적으로 가면서도 한국적 디자인을 더하고 나무와 돌 등 자연 자연소재로 마감을 살렸습니다. 조명은 할로겐이나 부분조명을 사용해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룸의 이름 역시 달오름, 달아래, 별오름, 별아래, 나무사이 등 우리말을 활용했고요. 활어회 기반의 한식 파인다이닝 식당으로 탈바꿈하면 더 경쟁력이 있을 거라 내다봤습니다.

손님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2006년 5월 오픈했는데, 사실 1년 만에 손님들이 상당수 바뀌었어요. 기존에 오시던 손님들은 낯설어하셨거든요. 하지만 변화가 꼭 필요한 시기였기에 기존 손님들의 어색한 반응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이전 후에 자리를 잘 잡은 덕분에 부산 출신 역대 대통령이 모두 방문하고, 해외 국빈, 글로벌 기업의 회장이 찾는 횟집으로 여전히 명성을 이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반갑고 고마운 손님은 대를 이어 찾는 분들입니다. 어릴 때 어른들의 손을 잡고 왔다가 이제는 장성해 자녀와 함께 올 때, 업혀 왔던 아이가 어느덧 대학생이 되어 다시 찾을 때 보람을 느끼죠.

큰 변화 속에서도 선대부터 이어져 온 원칙과 비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부모님이 늘 식재료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어요. 회는 생물을 다루잖아요. 좋은 식재료를 쓰고, 정직하게 조리하는 원칙은 변함없이 이어오고 있습니다. 철에 따라 가장 맛이 좋은 생선을 수급해 수족관에서 가장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 최종 손님상에 내드립니다. 또 하나 자부하는 점은 40년째 변하지 않는 장맛, 김치맛입니다. 모두 직접 담그거든요. 김치의 경우 품이 너무 많이 들어 중국산으로 바꿔도 되는지 연구해봤는데 역시 안 되겠더라고요. 횟집 아들로 26년, 횟집 사장으로 16년을 살았는데 해가 갈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식당의 기본인 회, 장맛, 김치, 탕의 맛이 변하지 않도록 신경쓰고 있습니다.

백년가게로 선정되었는데요. 앞으로의 각오가 궁금합니다.

노포라고 해서 꼭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고집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있으니까요. 짧은 주기의 유행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큰 트렌드에 맞춰 적당히 변화할 때 오래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60년을 더해 진짜 백년가게를 이끌고 싶습니다. 저는 수정궁을 밥집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좋은 회를 믿고 먹을 수 있는, 기본이 되어 있는 밥집으로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나아가 또 한 번 도전할 기회가 있다면 배에서 잡은 고기를 바로 먹는, 캐주얼한 어시장 분위기의 좀 더 대중적 가게를 선보이고 싶습니다.

부산 수정궁

· 주소 : 부산 수영구 민락수변로 25
· 전화 : 051-753-2811
· 영업시간 : 11:30~15:00, 17:30~22:00(설날, 추석 당일 휴무)
· 주요메뉴 : 계절생선회 정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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