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으로 읽는 왕실의학

<10> 왕들의 송이버섯 사랑과 진상품

송이버섯은 『조선왕조실록』에 송균(松菌), 송심(松蕈), 침송이(沈松茸), 생송이(生松茸), 건송이(乾松茸), 건송균(乾松菌), 엄송균(醃松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나온다. 1419년 세종은 선양(禪讓)을 윤허한다는 칙서를 가지고 한양을 방문한 명나라 사신에게 송이버섯을 연이어 보낸다. 세종 1년 9월 1일 그리고 이틀 후인 9월 3일이었다. 임금의 송이버섯 선물은 소중한 사람에게 정성을 표하는 상징성이 있었다. 그만큼 왕이 즐기고, 가치 있게 생각하는 식품이기 때문이다.

버섯 중의 으뜸인 송이버섯은 각 지역의 대표 진상품으로 올라있을 정도였다. 송이버섯을 왕실로 올리는 진상의 역사는 신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 성덕왕 3년(704)에 “웅천주(熊川州)에서 금지(金芝)를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중국의 『포박자(抱朴子)』에 의하면 금지(金芝)는 나무에서 나는 버섯이라고 하여 이를 송이(松茸)로 보기도 한다. 송이가 처음 등장하는 건 고려 문신인 이인로(李仁老:1152~1220)가 지은 『파한집(破閑集)』에 송지(松芝)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송이’라는 말은 이색(李穡:1328~1396)의 문집인 『목은집(牧隱集)』에 “송이버섯을 보내 준 민지후(閔祗候)에게 붓을 달려 사례하다.(走筆謝閔祗侯惠松茸)”라는 문장을 통해 처음 등장한다.

이처럼 신라와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송이버섯은 임금을 비롯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은 최고의 식품이다. 이에 비해 중국에서는 송이버섯을 향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중국 사신으로 조선에 최소 14차례나 온 오간 황엄(黃儼:?~1423)은 송이버섯의 진가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신의 자격으로 황엄은 왕이나 왕자 또는 대신이 베푸는 각종 연회에 참석했다. 최고의 음식으로 손님을 맞는 연회에 진상품인 송이버섯도 올랐을 것이다. 황엄은 맛 본 그 송이버섯 향에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명나라에서 사신이 입국하면 조선의 관료들은 양국의 현안은 물론이고 그 신상정보를 낱낱이 파악한다. 여러 채널을 통해 확인한 정보는 임금에게 세세하게 보고되었다. 따라서 세종은 명나라 사신인 황엄의 섭생과 기호를 알고 송이버섯을 선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명나라 사신 접대에 송이버섯이 특산물로 올랐다. 『선조실록』 선조 34년(1601) 10월 30일 기록에 따르면 홍천현감(洪川縣監)을 지낸 심희수(沈喜壽)가 사신 접대용으로 지역에 할당된 절인 송이버섯(沈松茸) 세 사발을 확보하기 위해 백성들이 힘들었다고 토로하기도 하였다.

조선의 송이버섯 효능은 점점 중국에도 알려지게 된다. 이에 세종은 명나라 황제인 선덕제(宣德帝)에게 보낸 선물에 송이버섯도 넣는다. 명나라 사신은 아예 귀국 때 가져갈 물품으로 송이버섯을 적기도 했다. 단종 즉위년 11월 12일 강맹경과 이변은 중국 사신 김유(金宥)와 송이버섯의 양을 상의한다. 강맹경 등은 “생송이인 침송균(沈松菌)과 마른 송이인 건송균(乾松菌)을 준비했습니다. 양이 적당합니까?”라고 물었고, 김유는 “선물의 양은 귀국에서 결정하십시오.”라고 답한다.

한편 세조(世祖) 때 강화유수인 권지(權摯)는 작고 품질이 떨어지는 송이버섯을 진상한 게 빌미가 돼 파직되기도 했다. 같이 진상한 개성의 백성 전봉의 품질 좋은 송이와 비교가 되었던 것이다. (『세조실록』 세조 7년(1461) 8월 19일) 연산군은 귀한 송이버섯 확보를 위해 백성이 들어오지 못하는 금표(禁標) 지역을 확대하기도 했다. 백운산(白雲山)에서 송이버섯이 난다는 보고를 받자 금표지역으로 선언한 것이다. (『연산군일기』 61권, 연산군 12년(1506) 2월 3일) 송이버섯을 별미로 즐겼던 왕은 83세까지 장수한 영조(英祖)였다. 『영조실록』 111권, 영조 44년(1768) 7월 28일에는 “송이(松茸), 생복(生鰒), 아치(兒雉:꿩고기), 고초장(苦椒醬) 이 네 가지 맛이 있으면 밥을 잘 먹으니, 이로써 보면 입맛이 영구히 늙은 것은 아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민간에서도 송이버섯은 최고의 음식이었다. 고려 시대 황순익(黃純益)이 재상 김존중(金存中)의 집에 갔다가 때마침 누군가 바친 송이(松芝)를 먹고 “어젯밤 (맛이 있는 것이 먹고 싶어) 식지(食指)가 움직이더니, 오늘 아침 기이한 것을 맛보게 되었네. 원래 자그마한 언덕에서 자랄 천성이 아니며, 더욱이 복령(茯苓)의 향기를 가졌네.”라는 시를 지었다는 일화가 『파한집(破閑集)』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규보(李奎報)나 이색과 같은 문인 또한 송이를 신선의 음식으로 비유하기도 하였고, 조선시대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옥과 향기롭고 살지고 연하고 맛도 참 좋다.’라고 칭송하고 있으며 김시습(金時習;1435~1493)도 「송균(松菌)」이라는 예찬시를 남겼고,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이 지은 『어우야담(於于野談)』에는 ‘묘향산과 금강산의 승려들이 매년 가을 팔월이면 각기 기름간장과 밀가루를 가지고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 송이버섯을 채취해 구워 먹는데 그 맛이 천하의 진미’라고 하였다.

『동의보감』은 송이버섯에 대해 “속방(俗方)에서 ‘성질이 평(平)하고, 맛이 달고, 독이 없다. 맛이 매우 향기롭고 솔 냄새가 진하다. 산속의 오래된 소나무 밑에서 솔 기운을 받으면서 돋아났다. 나무버섯(木茸) 가운데서 제일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편도선염, 암, 산후통, 기관지와 폐 기능 저하, 설사, 소화불량, 소변 이상, 고혈압 등에 식치로 활용해왔다.

송이는 그윽한 향취는 물론 질병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 항암작용과 함께 폐와 기관지에도 좋다. 심신 안정과 염증 해소, 종양 억제를 기대할 수 있다. 성질은 서늘하고 열량이 적어 몸에 열이 많고, 비만인에게 잘 맞는다. 혈액순환 촉진, 콜레스테롤 강하 효과가 있고, 비타민B1, B2, D를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면역력 증강. 호르몬 균형 유지, 위장기능 강화, 당뇨, 고지혈증, 동맥경화, 심장병 등에도 도움이 된다.

버섯은 썩은 땅에서 나거나 (菌必生糞土)
아니면 나무에서 나기도 한다 (不爾寄於木)
모두가 썩은 데서 나기에 (朽腐所蒸出)
흔히들 중독이 많았다 하네. (往往多中毒)
이 버섯만은 소나무에서 나 (此獨産松下)
항상 솔잎에 덮여있다네. (常爲松葉覆)
소나무 훈기에서 나왔기에 (爲有松氣熏)
맑은 향기 어찌 그리도 많은지 (淸香何馥馥)
향기 따라 처음 얻으니 (尋香始可得)
두어 개만 해도 한 움큼일세. (數箇卽盈掬)
내 듣자니 솔 기름 먹는 사람 (吾聞啖松腴)
신선 길 가장 빠르다던데 (得仙必神速)
이것도 솔 기운이라 (此亦松之餘)
어찌 그 신선의 약이 아니겠는가. (焉知非藥屬)

- 이규보(李奎報:1168~1241)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文集)』 「송이버섯을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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