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2

60년 한결같은
금남시장 골목냉면

골목냉면 이규호 대표

“이 ‘골목냉면’ 상호는 손님들이 붙여준 이름이에요. 간판도 없이 골목 안쪽에서 시작한 작은 냉면집이었는데 손님들끼리 ‘그 골목 냉면집에서 보자’라고 소통하다 보니 자연스레 ‘골목냉면’으로 굳어졌죠. 이만큼 의미있는 이름이 또 어디 있겠어요.”

손님이 더 아끼는 금남시장 터줏대감

금호동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금남시장을 가장 오래 지켜온 가게는 어떤 모습일까? 동네가 변하고 시장이 변한 60년 세월 동안 ‘골목냉면’은 참 고맙게도 오롯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머니 이상임 창업주에 이어 2대째 가게를 잇고 있는 이규호 대표는 흙벽으로 마감한 소박한 초창기 가게 풍경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냉면 한 그릇이 30원이던 시절이다.

“방 한 칸, 부엌 한 칸인 가정집에서 간판도 없이 시작했어요. 동그란 스테인레스 상 두어 개를 놓고 손님을 맞았으니 학교 다닐 때부터 자잘한 심부름은 제 몫이었죠. 고민할 것도 없이 어머니를 돕다 자연스럽게 가게를 이어받았습니다.”

1960년대 문을 연 골목냉면은 서울식 냉면의 시초이기도 하다. 매콤달콤한 양념장에 참기름과 깨가 듬뿍 들어가 고소함까지 더한 냉면은 한번 맛보면 자꾸 생각나는 감칠맛을 자랑한다. 엄마 손을 잡고 들른 꼬마가 이제는 제 아이와 함께 찾는 골목의 냉면집. 이규호 대표와 아내 진숙희 씨가 고집스레 지켜낸 골목냉면 덕분에 금남시장의 골목 한 자락은 세월을 뛰어넘는 온기로 가득하다.

서울식 냉면, 매콤 새콤 고소하죠

1966년부터 자리를 옮기지 않고 골목냉면을 운영 중입니다. 어머니께서 어떻게 냉면가게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60년 전 이곳 금남시장은 노점들이 모여 있는 재래시장이었어요. 고향이 서울인데 어머니 음식 솜씨가 꽤 좋았거든요. 배고픈 시절, 밀가루로 수제비나 칼국수를 집에서 많이 만들어 먹었죠. 하지만 장사하기에는 집에서 흔히 먹는 음식보다는 별식이 낫잖아요. 그래서 냉면을 택하게 됐습니다. 가정집에서 간판도 없이 시작하다가 66년도 즈음 정식으로 등록을 한 것 같아요.

거의 60년 역사를 자랑하는데요. 주변의 개발 붐에도 한 자리를 지켜온 점이 놀랍습니다.

전쟁 후 살 터전을 모두 잃었는데 당시 김구 선생님이 금호동 일대에 방 하나, 부엌 하나로 구성된 집을 지어 공급해줬어요. 일명 ‘김구주택’인데요. 그 한 채에서 시작해서 차츰차츰 가게를 늘려나갔죠. 지금은 김구주택 4채를 합친 규모에요. 60~70년대만 해도 여성이 혼자 외식하는 일이 흔치 않았거든요. 그런데 우리 집은 많이들 찾아주셨어요. 간판 없는 가정집에서 장사하니 마음이 더 편했던 거죠. 재개발이되면서 원주민들이 외곽으로 많이 떠났는데요. 오랜만에 다시 찾아와서는 제 손을 꼭 붙잡고 ‘금호동에 들를 곳이 있어 다행이다. 오래오래 해줘서 고맙다고’라고 인사를 해요. 만남의 장이 될 정도이니 더욱 사명을 가지고 자리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가게 이름에서 보이듯 ‘냉면’이 주메뉴인데요. 그 맛의 비법이 궁금합니다.

서울식 냉면이에요. 냉면은 아무래도 이북에서 발달해 남쪽으로 내려왔잖아요. 겨울철, 동치미 국물에 메밀면을 말아 먹는 게 시작이라고 하고요. 그래서 보통은 맑은 국물에 슴슴한 맛이 특징이죠. 그런데 저희는 멸치와 황태 등 해물로 육수를 뽑은 다음 고춧가루에 깨까지 듬뿍 들어간 양념을 더합니다. 새콤달콤하면서도 시원하고 칼칼한 맛이 저희 냉면만의 특징이죠. 당시만 해도 양념 냉면은 저희집 말고 찾아볼 수 없었어요. 서울식 냉면의 시초였는데 그 뒤로 비슷하게 많이 등장하더라고요. 칼칼한 냉면에 직접 빚은 김치만두를 더하면 궁합이 좋습니다.

직접 맛을 보니 매콤함, 새콤함, 달콤함, 고소함의 조화가 잘 이뤄져 한번 맛보면 계속 생각나는 맛이네요.

맞아요. 아이와 함께 시장 보러 나온 엄마가 아이에게도 조금씩 덜어주거든요. 그렇게 먹어 버릇한 아이가 시장만 오면 골목냉면을 가자고 조르는 거죠. 이제는 그 애가 결혼해 자녀와 함께 온다니까요. 입맛의 대물림을 보는 뿌듯함이 큽니다.

어머니에게 장사를 배우셨을 텐데요. 가장 큰 가르침은 무엇이었나요?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과 재료를 아끼지 않으셨어요.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넣어 손맛과 정성을 더하면 맛이 좋을 수밖에 없죠. 어머니의 조리법 그대로 60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몇십 년을 살다 다시 찾은 손님들도 옛날 맛 그대로라며 반가워하시죠.

기억에 남는 고객도 많으시겠어요.

한둘이 아니죠. 언젠가는 가족 네 분이 오셔서 영국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포장이 되냐고 묻더라고요. 딸이 유학 가서 결혼해 임신했는데 골목냉면이 생각난다고 했다면서요. 영국은 너무 먼 거리라 힘들다고 안타깝게 거절했는데요. 얼마나 지났을까요? 결국은 그 따님이 가게에 오셨더라고요. 참 반갑고 고마웠죠. 미국에 이민 간 제 친구의 경우 맨해튼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 통성명하다 이래저래 동네 이야기가 나왔다고 해요. 금호동에서 왔다니까 단번에 ‘골목냉면’을 아냐고 묻더랍니다. 저희집 단골들이 세계 곳곳에 계시거든요. 덕분에 금세 친해졌다고 해요. 냉면 하나로 서로 이어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잖아요.

프랜차이즈 제안도 많았을 것 같은데 한 자리만을 지키시는 이유가 있나요?

‘골목냉면은 금호동에 와서 먹어야만 가치가 있다’라는 고집이 있었어요. 프랜차이즈 섭외도 다 거절했죠. 크게 번창하지는 못했을지언정 한 자리를 지킨 덕에 IMF나 코로나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음식 장사를 하려면 어느 정도 고집이 있어야 장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배달 역시 음식은 자리를 뜨는 순간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한참 망설였는데요. 포장 기술과 배달문화가 발달한 덕에 15년 전부터 배달도 시작하고 있어요. 아, 부산의 조선비치호텔 한식부에서 5년간 저희 골목냉면을 론칭한 사례는 특별하죠. 호텔에서 유명한 냉면집은 다 돌아다닌 끝에 택한 곳이 저희집이라 하더라고요. 맛을 인정해준 덕분에 자부심을 갖고 부산 최고의 호텔에 선보이게 되었죠.

직접 고안하신 골목냉면의 상징 ‘방패연’에 대표님의 철학이 다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붉은색은 한국 서울냉면의 대표인 골목냉면의 전통을 상징하고, 파란색은 1966년부터 이어온 긍지와 자부심을 말합니다. 녹색은 2대째 이어온 전통의 맛, 노란색은 최고의 재료로 개운한 맛을 내는 깨끗함, 흰색 꼬리표는 골목을 표현하고 있죠. 4색으로 표현한 전통, 긍지, 좋은 맛, 깨끗함은 골목냉면을 이끄는 저의 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 인증 백년가게로 선정되었습니다. 소감과 함께 앞으로의 각오를 들려주세요.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영업해온 가치를 인정해준 것 같아 자긍심을 갖게 됩니다. 영광이죠. 말 그대로 100년 이상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손님들과도 그렇게 약속했거든요. 다만, 일본처럼 대를 이어 가업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을 신경 써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모쪼록 좋은 타이틀을 얻었으니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늘에 최선을 다하며 골목냉면을 지켜가도록 하겠습니다.

골목냉면

· 주소 : 서울 성동구 독서당로 295-7
· 전화 : 02-2235-2540
· 영업시간 : 10:00~20:00(4~8월까지 휴무 없음, 9월~3월까지 월 1~2회 휴무)
· 주요메뉴 : 냉면(물/비빔), 만두, 만둣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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