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으로 읽는 왕실의학

<6> 태종의 오십견과
역아(逆兒)의 뜸 치료

“상왕의 양쪽 어깨에 심한 통증이 계속됐다. 의원 박윤덕이 매일 뜸질을 하였다. 영의정 유정현, 참판 이명덕 등이 아뢰었다. 뜸질을 중단하고 온천에서 치료하십시오. 상왕이 답하셨다. 병이 심하여 몸을 움직일 수 없다.”

- 『태종실록』 세종 1년(1419) 4월 16일

상왕인 태종은 춘추가 어느덧 53세에 이르자 어깨 통증에 시달렸다. 태종은 문무를 겸한 영웅이다. 15세에 진사시험, 16세에 문과에 급제한 학자이면서 무예에도 능했다. 태종이 살아가던 시대는 고려 말과 조선 초로 혼란스러운 시절이었다. 전장에서 사는 군인과 다름없는 살얼음판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에 성격도 진취적이고 적극적이었다. 왕이 된 후에도 몸에 익은 야외활동은 사냥으로 이어졌다. 많은 신체활동은 크고 작은 부상도 야기했다. 태종은 즉위 4년에 노루를 사냥하다 말에서 떨어지기도 했다.1)

중년이 된 태종은 회전근개 질환이나 오십견을 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회전근개 질환은 어깨 회전근육 주변의 힘줄에 염증이 생기거나, 파열되어 생긴다. 팔을 들어 올리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 때 통증이 있고, 누웠을 때, 잠들기 전 통증이 심한 편이다. 원인은 다양한데, 큰 충격이나 퇴행성 변화, 혈액 순환 저하가 가장 많이 거론되며, 회전근개를 많이 사용해 힘줄이 닳아 생기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오십견은 만성 어깨 관절 질환이다. 흔히 특별한 외상이 없거나 가벼운 타박상 후 견관절 둔통으로 시작한다. 서서히 통증이 심해지며, 관절 운동이 힘들게 된다. 누웠을 때 통증이 더 심해져 수면장애로 이어지기도 한다. 주요 원인은 어깨 관절 주머니 염증과 유착에 따른 어깨 경직으로 병명은 유착성 관절낭염이다. 어깨의 관절 주머니 염증으로 주변 조직이 굳어져 생긴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동결견으로 표현한다. 어깨가 얼음이 언 것처럼 어깨가 굳는다는 의미다. 오십견을 포함한 심한 어깨 통증은 담음(痰飮)이나 풍한습(風寒濕) 등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치료법으로는 한약, 침구, 부항, 약침, 추나 등이 있다.

『동의보감』에는 “잠시라도 어깨가 차갑고 아픈 것이 느껴지면 반드시 먼저 견우혈 등에 뜸을 떠서 심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태종 역시 어깨 통증에 대한 1차적인 방법으로 뜸을 선택했다. 그러나 호전이 되지 않자 주위에서 따뜻한 온욕을 청한 것으로 보인다. 어깨질환은 치료기간이 생각보다 길다. 아마 태종도 진전이 없는 치료에 답답함을 느낀 듯하다.

한편, 뜸은 주술 폐습의 폐지에도 기여한다. 세종은 7년 10월 23일 길흉화복에 연연해 날짜를 정하는 택일 문화의 폐해를 지적한다. 좋은 날을 기다리느라 죽은 아내의 장사를 오랫동안 지내지 않은 공조정랑 권시의 죄를 물은 임금은 길흉화복에 미혹된 세태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요망한 술서를 불태우게 하였으나 어찌 몰래 감추어 쓰는 이가 없겠는가. 이 역시 법률 조문에 중한 것이니 그 죄로써 죄주는 것이 마땅하다. 여전히 침구(針灸) 치료도 택일하느라 피하는 날이 많다. 이처럼 날을 받아 뜸질(灸)하면 1년이 지나도 치료받지 못할 수 있는데 이런 것을 누가 지었을까. 요즈음 중병 환자가 피하는 날을 따지지 않고 뜸질을 해 낫는 사람이 많다. 잡서는 없애라.”

- 『세종실록』 30권, 세종 7년(1425) 10월 23일

연산군은 뜸을 경연(經筵) 불참의 변명으로 활용한다. 경연은 임금이 학문을 닦으면서 정치 현안을 논의하는 학습이다. 연산군은 경연을 잘 열지 않았다. 그러자 연산군 1년 5월 17일 신하들이 연명으로 경연 재개를 청한다. “근래에 오래도록 경연을 폐하셨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이 힘들다면 한 번씩은 나오셔서 신하들을 대하심이 가합니다.” 이에 대해 왕은 “요즈음 뜸을 뜬 자리가 곪고 발이 쑤시기 때문에 정지하였다.”며 거절한다.

뜸에 대한 효과는 여러 질환에서 증명되었지만, 그 효과 중 놀라운 것이 있다. 바로 역아(逆兒)이다. 역아란 태아의 머리가 골반 쪽을 향하지 않고 반대로 위를 향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역아의 경우 출산 시 아기의 발이나 엉덩이가 먼저 나오고 신체에서 가장 큰 머리가 나중에 나오게 된다. 이때 아기의 머리가 산도에 끼어서 뇌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머리가 산도를 통과할 때 머리와 골반 사이에 탯줄이 끼면서 일시적으로 아기에게 산소 공급이 중단되어 질식이 일어날 위험 또한 높아진다.

역아는 임신 28주차 임신부들에게는 20% 정도에서 보이지만 저절로 바로잡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출산이 임박할 때까지 역아로 있는 경우도 3~4%정도나 된다. 현재는 대개 이러한 경우 제왕절개를 하게 된다.

『동의보감』에는 “역산(逆産)에 약을 써도 효과가 없으면 빨리 임신부의 우측 새끼발가락 끝에 뜸을 3장 뜬다. 그러면 곧 아이를 낳는다. 이 방법은 태반이 내려오지 않을 때도 쓸 수 있다. 그곳이 지음혈(至陰穴)이다.”라고 하였다.

몸뚱이 여기저기에 쑥뜸질 자국이라 (身上累累艾炷瘢)
밤낮으로 문지르매 눈물이 줄줄 흐르네. (??日夜淚潺湲)
두 어버이의 남긴 몸이 이제 다 상했으니 (二親遺體今傷盡)
후일 지하에서 어버이 뵙기 어렵겠구나. (異日難承地下顔)

- 김종직(金宗直:1431~ 1492) 『점필재집(?畢齋集)』 시집 23권

  • 1)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짐으로 인하여 말에서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하였다. - 『태종실록』 태종 4년(1402)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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