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1

한약인의 사명으로 되살린 자금정,
누구나 만날 수 있어야죠

대구 청신한약방 사복석 대표
청신한약방

맥을 잇는 일은 사사로이 덤빌 수 없다. 묵직한 사명을 짊어지는 고단한 여정을 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묵묵히 길을 잇는다. 대구 청신한약방 사복석 대표가 대구 약령시를 깨워 활기를 불어넣고, 만병해독단으로 통하는 자금정을 되살린 것처럼 말이다.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다. 1958년 한약방 종업원으로 시작해 1970년 한약방을 열었으니 한약업계에 몸담은 지도 어느덧 65년. 사복석 대표는 한약업사로 몰두하며 생긴 열정과 책임감으로 굵직한 발자국을 남겼다.

대구 약령시의 부활을 이끌다

한약 냄새가 은은하게 반기는 골목, 대구 약령시의 중심에 청신한약방이 자리한다. 1970년 한약업사 자격을 얻어 대구 약령시에 한약방을 차린 지 53년, 그의 청춘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곳이다. 더욱이 도시화에 밀려, 양방에 밀려 쇠락해가던 약령시를 되살리는 데 앞장선 그이기에 애정이 더 깊다.

조선 효종 9년(1658년)에 문을 연 대구 약령시는 봄, 가을 정기적으로 운영한 한약재 전문 시장으로, 전국 한약 상권을 쥐락펴락할 정도로 규모를 키웠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전쟁, 산업화를 차례로 겪으며 점점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8년, 한약방이 안정되어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해지는 시기,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던 약령시의 옛 명성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시작되었어요.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약령시부활추진위원회를 발족해서 기존의 달구벌축제 안에 약령시 한방문화축제를 함께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오로지 자발적으로, 회원들이 회비를 모아 추진한 축제였죠.”

오로지 약령시를 되살리겠다는 의지 하나로 5년간 직접 주최한 축제. 덕분에 전국 한방 종사자가 한데 모이는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발전했고, 그 역할을 인정받아 1983년도에는 정부의 정식 문화축제로 승인되며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물론 사복석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구 약령시가 예전에 ‘유명했다더라’ ‘대단했다더라’는 ‘~카더라’는 있지만 제대로 된 문헌이 없다는 게 아쉬웠던 그는 자료를 모아 대구 약령시의 역사를 책으로 펴내는 활동을 시작했다. 직접 발로 뛰며 3년 동안 자료를 모으고, 편찬위대표를 맡아 집필자를 선정해 <대구약령시사>를 집대성하기까지 총 5년이 걸렸다. 열정으로 편찬한 책 한 권이 한의약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서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물론이다.

800년 명약, 자금정의 놀라운 힘

뿌리를 제대로 파고드는 사복석 대표의 집요함과 열정은 그를 거둔 은사님의 가르침과 맞아떨어지는 성정이었다. 보통 1년도 못 버틴다는 엄격한 스승 아래서 무려 8년을 버티며 한약의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진 그는 ‘재료를 속이면 다 거짓이다’라는 원칙을 세우게 되었다. “의서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단, 재료를 옳게 써야 그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죠. 제 은사님도 돈을 더 받더라도 재료는 속이지 말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정직하게 살면 답이 나와요. 이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의 단단한 고집은 명맥이 끊긴 명약까지 되살려내기에 이른다. 바로 820여 년 전, 중국 송나라 때부터 전해오던 명약, ‘자금정’이 그것이다. ‘만병해독단’이라고 부를 만큼 해독작용이 뛰어난 이 약은 조선에서는 궁중내의원이 직접 만들어 궁중에 비상 구급약으로 비치하고, 일부는 임금이 최측근 신하에게 직접 하사하는 귀한 약으로 통했다. 단, 약재(문합, 산자고, 대극, 속수자, 사향)가 귀하고 제조 과정이 매우 까다로워 지금에 이르러서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실정이었다.

“약령시 부활 운동에도 불구하고 대구의 한방 상권은 점차 쇠락했습니다. 양방에 밀리고, 건강보조식품에 밀린 것이죠. 그래서 대구 약령시를 대표할 만한 브랜드를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공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해독약이었고, <동의보감> 등 12개 유명 한방서적에 담긴 자금정이었죠. 만들기 어려운 만큼 내가 안 하면 안 되겠다는 사명감이 컸습니다.”

전통 한방의서의 비법 그대로 만드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문합은 나무에 기생하는 충영으로 벌레집을 깨끗이 씻어내고, 산자고는 두견란 껍질을 벗기고, 대극은 뿌리속심을 제거하고, 속수자는 껍질을 까서 흰 알맹이를 가려내어 기름을 짜는 과정을 거쳐야만 자금정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데, 이 기간만 6~7개월이 걸린다. 사복석 대표는 여러 번의 실패를 딛고 2004년 마침내 자금정 제조에 성공했다. 불굴의 의지가 만든 약이었다. 해독 효과는 금세 증명이 되었다. 당시 경북 성주에 쯔쯔가무시가 유행하며 보건소 환자 수용이 어렵다는 뉴스를 보고 망설임 없이 자금정 500정을 기부한 사복석 대표. 곧 자금정 10알에 환자가 다 나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서야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이후 5년 동안 자긍심 하나로 자금정 제조에 몰입했고, 자금정은 아토피, 구내염, 성인 약물중독 등에 탁월한 효과를 자랑하며 입소문을 탔다.

일반의약품으로 더 널리, 오래 이어지길

자금정의 뛰어난 효능과는 별개로 나이가 들면서 이를 홀로 만드는 일은 점점 버거워졌다. 이에 사복석 대표는 국민의 보건 향상을 위해 개인이 아닌 기관이나 기업이 나서주길 바랐다. 그렇게 대구시를 찾고, 관계자를 찾으며 체계적인 연구를 이끌었다. 덕분에 2017년 3월 한국의료기술응용센터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자금정이 아토피성 피부 질환을 치료하고 체내 쌓여있는 독성 및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 간 해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와의 아토피성 피부질환 치료 가능성에 대한 연구는 보완통합의학 분야 상위 20% SCI급 저널인 < Journal of Ethnoph Armacology > 2018년 7월 최신판에 게재되며 공신력을 얻었다. 대구한의대와의 기술 협약으로 지난해 3월, 간 섬유화 개선 관련 연구가 국제학술지에 실렸고, 현재 마약·알코올·농약·의존성 약물억제 등 약물중독 치료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대를 이어 만들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다.

“저도 나이가 많아 더 이상 만들기가 어려워요. 약령시 동료는 물론 한의원을 운영하는 아들도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손사래를 쳐요. 엄두를 못 내는 거죠. 한방제약회사도 포기하더라고요. 자금정은 국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없으면 명맥을 잇기가 어렵습니다. 일반의약품으로 자금정을 만날 수 있도록 논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복석 대표는 1g에 불과한 자금정 한 알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아토피에서 벗어나고, 구내염이 낫고, 성대결절이 사라지며, 중풍전조증을 예방한 환자를 숱하게 보아왔다. 한약업사의 길을 걸은 지 53년. 그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욕심을 부린 적이 없다. 약령시를 살리고, 한의업권을 지키고, 자금정을 제조하며 함께 상생하는 큰 그림을 그려왔다.

“자녀들이 모두 잘 자랐어요. 한의사로, 의사로, 의료경영자로, 특수교육전문가로 각자의 길을 잘 닦았죠. 이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요. 정직하게 잘 살면 다 돌아오거든요.”

아무도 가지 않은 길, 누구도 나서지 않은 길을 개척해온 사복석 대표의 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의 피, 땀, 눈물이 담긴 자금정을 일반의약품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나라 한의약의 진화를 이끈 그의 열정에 고마움을 전할 뿐이다.

청신한약방

· 주소 |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 16-1
· 전화 | 053-255-2036
· 영업시간 | 월-금 10:00~16:00, 토 10:00~12:00(목요일, 일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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