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2

96년의 역사,
4대째 잇는 한식당

역전회관 김도영 대표
역전회관

1962년 용산역 앞, 석쇠에 구운 바싹불고기와 입맛을 돋우는 산낙지초회, 든든한 선지해장국으로 입맛을 사로잡은 식당이 생겨났다. 이름하여 역전회관. 이 오래된 식당은 1998년 용산역 재개발로 주변이 하나둘 허물어질 때도 마지막까지 남았다. ‘역전회관이 아니면 어디서 밥을 먹느냐’라며 손님들이 진정서를 넣어 최후의 밥집으로 자리한 것이다. 맛은 물론 인심까지 넉넉했던 역전회관은 마포로 자리를 옮겨서도 그대로다. 3대째 역전회관을 지키고 있는 김도영 대표 곁에는 어느덧 장성한 딸 신유정 이사와 아들 신상호 셰프가 든든하게 4대째 명맥을 잇고 있다. 단순히 오래된 시간으로만 승부하지 않고 2014년부터 2023년까지 블루리본 서베이에 선정되고, 2017년부터 2023년까지 미쉐린가이드 빕 구르망((Bib Gourmand) 맛집에 7년 연속 선정될 만큼 꾸준한 발전을 이뤄왔다.

바싹불고기로 승부한 남도 한식의 맛

“올해로 96년 차에요. 100주년은 당연히 제가 맞이해야죠.”

역전회관의 뿌리는 1928년 순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대인 고(故) 김막동 창업주가 순천에서 설렁탕, 수육, 불고기를 주메뉴로 호상식당을 연 것이 첫 시작. 어머니에게 비법을 전수받은 2대 고(故) 신진우·홍종엽 씨가 1962년 용산역 앞에 한식집 역전회관을 차렸고, 자연스럽게 아들 대로 이어져 신한식·김도영 씨가 3대 경영을 시작했다. 무려 96년의 세월, 한 줄 요약은 쉽지만 늘 석쇠와 고군분투하는 노포를 4대가 잇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때론 아버지의 강력한 추진력으로, 때론 아들을 위한 엄마의 강인함으로 대를 이었다. 순천에서 싹을 틔우고, 용산에서 뿌리 깊은 나무로 성장했으며, 마포에서 가지를 뻗어나가는 역전회관. 빠르게 변해온 시대를 관통하며 100년의 역사를 쌓아가는 참 귀한 식당의 진솔한 이야기를 김도영 대표를 통해 들어본다.

마포를 발판 삼아 글로벌 도약 꿈꿔

역전회관은 100주년이 머지않은 역사 깊은 식당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 선정 백년가게 인증이 더욱 남다르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올해로 벌써 96년 차입니다. 정부 기관의 백년가게 인증은 오래된 가게에 바퀴를 달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밀어주는 거죠. 사실 요즘은 한 가게를 10년 동안 이어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거든요. 30년 이상 꾸준히 이어온 가게를 발굴하는 정책을 통해 오래된 가게를 지원하고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납니다. 역전회관도 100년 달성의 의지를 다잡게 되었고요.

용산역 시절부터만 따져봐도 6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사이 도시개발로 자리도 옮겨야 했고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식당의 명맥을 이어갔는지 궁금합니다.
시부모님은 역전회관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었고, 남편은 직장인이었는데 1990년 즈음 아버지께서 반강제로 그만두게 했어요. 식당을 이어받으라고요. 아버님이 워낙 강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이었기 때문에 남편도 거절을 못 하고 바로 식당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카운터를 보는 게 아니라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무 깎고, 쓰레기를 버리는 등 허드렛일부터 시작했어요. 그렇게 기본부터 다진 후 전 메뉴를 다 익히고 식당을 함께 운영한 지 10년쯤 되었을 때 용산역 재개발이 시작된 거죠. 주변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떠나자 남편도 식당을 접으려고 맘을 먹은 상태였어요. 일이 워낙 힘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전까지 주방일이나 서빙을 돕기는커녕 카운터 한번을 본 적 없던 제가 가게를 잇겠다고 나선 거죠.

이전까지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걸로 아는데요. 갑자기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아들이 가게가 없어질 거란 소식을 듣더니 본인이 잇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군대에 다녀오고, 유학 중이던 학교를 졸업하려면 적어도 7년이 걸리잖아요. 그사이 사라지면 대가 끊기게 되니 엄마가 하면 어떻겠냐고 권하더라고요. 아들에게 부끄러운 엄마는 되지 말자는 각오로 뛰어들었습니다. 엄마의 강인함으로 용기를 낸 거죠. 일단 용산역 가게를 유지하며 마포에 새 가게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부모님은 못 마땅해했어요. 식당 운영이 쉬운 게 아닌데 경험 한번 없는 제가 뛰어든다고 하니 불안하고 미덥지 않았던 거죠.

현재의 마포 역전회관을 일군 셈인데요. 그 과정은 순탄했나요?
처음에는 의기양양했어요. 240평을 임대해 리모델링을 싹 해서 넓고 쾌적한 공간으로 옮겼으니 당연히 잘 될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손님이 점점 줄었어요. 문제는 대표 메뉴인 바싹불고기의 맛이었어요. 같은 재료와 양념을 쓰는 데도 맛이 달라진 거죠. 맛이 변하니 손님이 줄고, 7개월 동안은 월 3~4,000만 원씩 적자가 쌓였죠. 남편과 질리도록 맛을 보며 문제점을 찾는데 거의 6개월이 걸렸어요. 문제는 환경의 변화에 있었어요. 바싹불고기를 좀 더 따뜻하게 내드리려고 열전도율이 높은 판으로 바꿨더니 지글지글 끓으며 육즙이 사라지고, 새로 들인 설비의 화력도 너무 셌던 거죠. 또 회전율이 높은 용산 가게는 냉장고 문을 수시로 여닫는데 여기는 거의 닫혀 있으니 숙성 온도가 너무 낮았고요. 문제점을 찾아 개선하고 나니 손님들이 다시 찾기 시작했어요. 또 선지술국이 무료로 나가는 세트 메뉴를 구성해 근처 직장인들에게 입소문을 탔고요. 마음고생 끝에 10개월 째부터 손익분기점을 넘게 되었습니다.

변화의 과정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른 셈인데요. 대를 이어 운영하면서 변치 않고 지켜가는 원칙도 궁금합니다.
시부모님이 늘 강조하시는 게 좋은 원재료였어요. 재료가 좋지 않으면 양념 맛뿐이라면서요. 서비스 측면에서는 음식은 야박하지 않게 넉넉히 퍼줘야 한다고 하셨고요. 그 말씀을 늘 되새기며 최상의 재료를 고집하고, 세트 메뉴와 같이 넉넉히 즐길 수 있는 메뉴를 만들었습니다.

3대로 이어지는 과정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4대째는 순조롭게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아들은 처음부터 가업을 잇는 뜻이 있었기에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요리학교에도 진학했어요. 6개월간 주방에서 기본을 익혔고, 이제 듬직하게 식당 운영 전반을 살피고 있습니다. 디자인을 전공한 딸은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어요. 특히 우리 음식에 맞는 우리 술을 직접 만들어보자고 제안해 역전주를 탄생시켰죠. 1층 홀 한쪽을 양조장으로 개조해 9도짜리 탁주인 역전주와 자색역전주를 직접 제조하고, 15도의 맑은 탁주인 역전한주도 개발했습니다. 역전주는 대한민국주류대상 막걸리 부문 대상을 차지하며 좋은 술로 인정받게 되었죠. 아이디어와 감각이 남다르죠.

단순히 오래된 가게라 아니라 시대와 발맞추며 매우 트렌디하게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예전 그대로만 머문다면 오랜 단골만 계속 찾게 됩니다. 젊은 사람을 새롭게 끌어들일 매개체가 없으면 가게는 금방 사라지고 말아요. 외식업에 대한 꾸준한 공부는 기본이고, 주먹구구식 운영이 아니라 체계화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작은 업장의 경우 본인이 다 하려고 하면 가게 안에만 매몰되기 쉽거든요. 본인이 빠져나와 새로운 변화를 읽고, 공부해서 시스템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무리한 확장도 경계해야 하고요. 빚을 얻어 이곳저곳에 매장 수를 넓히기보다는 내 가게를 갖고 실속에 집중하는 게 오래 이어갈 수 있는 바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시장 진출도 꾀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꿈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미국 현지법인 설립을 구체화하던 중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하며 일단 보류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바싹불고기를 밀키트로 구성해 홈쇼핑 채널을 통해 판매하고, 홍콩에도 수출하며 돌파구를 마련하게 되었죠. 해외 진출은 아들과 딸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매장 확장의 경우 2호점, 3호점을 크게 내는 건 원치 않아요. 다만 5인 이하의 소규모 분점 형태로 전문점을 그려보라고 조언할 뿐이죠. 저는 고목의 뿌리 역할을 할 테니 가지를 뻗어가는 건 4대인 자녀들의 몫인 것 같아요. 일단 역전회관 100년을 잘 맞이해야죠.

역전회관

· 주소 | 서울 마포구 토정로37길 47
· 전화 | 02-703-0019
· 영업시간 | 평일 11:00~22:00(브레이크 타임 15:00~17:00)
주말 11:00~21:30(브레이크 타임 15:00~16:30)
월요일 휴무
· 주요메뉴 | 바싹불고기, 산낙지구이, 산낙지초회, 보쌈, 선지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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