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1

오직 팥으로 승부한다

부산 용호동할매팥빙수단팥죽 박재민 대표

팥을 삶는 열기가 가게 안을 가득 채운다. 적당하게 익은 팥을 살캉하게 졸여내는 동안 내내 감도는 긴장감. 어머니를 이어 부산 용호동할매팥빙수단팥죽(이하 ‘할매팥빙수단팥죽’)을 운영하는 박재민 대표의 하루 시작이다.

소박하게 달콤한 팥빙수와 단팥죽

매일 아침, 365일 반복하는 일이지만 팥 앞에서는 여전히 진중할 수밖에 없다. 할매팥빙수단팥죽은 그야말로 팥으로 시작해 팥으로 끝을 보기 때문이다. 곱게 갈린 얼음 위해 팥이 풍성하게 올라간 빙수에 옛 추억이 피어나고, 부쩍 쌀쌀한 날씨에는 속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단팥죽이 제격이다. 여기에 팥이 꽉 찬 ‘겉바속촉’의 붕어빵은 겨울철 별미로 등극했다.

“팥으로 승부를 보고 있습니다. 팥을 씻고, 고르고, 삶는 과정이 만만치가 않거든요. 어머니(이송자 창업주)가 지켜온 전통이 있기에 누가 되지 않도록 늘 신경을 곧추세우며 정성을 다합니다.”

옛날 방식 그대로 간 투명한 얼음, 그 위에 적당히 달면서 입안에서 자연스레 녹아내리는 부드러운 팥이 한가득, 여기에 직접 만든 사과잼 한 숟가락이 더해지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팥빙수가 완성된다. 소박한 먹거리가 하나둘 사라지는 요즘,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박재민 대표 덕분에 3천 원의 행복을 달콤하게 누릴 수 있다. 45년 가까이 변함없이 시장을 지켜온 빙수와 팥죽 한 그릇은 오늘도 많은 이들의 평범한 하루를 달콤하게 달래고, 따뜻하게 채운다.

팥에 진심인 가족들

할매팥빙수단팥죽은 2대째 이어지는 가게입니다. 그 출발이 궁금하네요.

처음에는 1976년 ‘용마상회’라는 이름의 탁주와 얼음을 납품하던 작은 가게였어요. 운영이 여의치 않자 어머니께서 소매점으로 떡볶이와 팥빵을 팔기 시작했는데 팥 맛이 아주 좋았던 모양이에요. 얼음장사를 같이 했으니 팥과 얼음으로 만들 수 있는 팥빙수 메뉴가 자연스럽게 생겨났죠. 여기에 여름 한 철이 아니라 겨울에도 맛볼 수 있는 단팥죽까지 선보이게 되었고요. 저는 제 나름대로 장사를 하면서 어머니를 도와주다가 18년 전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2대 경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팥빙수가 특별한 메뉴는 아닌데 일대의 ‘맛집’으로 떠오른 비결이 있을까요?

의도하지 않게 방송 덕을 봤습니다. 부산MBC에 ‘자갈치 아지매’라는 출근 시간대에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는데요. 어느 날 노부부가 하는 팥빙수가 있는데 담백하고 맛이 있더라는 사연이 전파를 탔어요. 1997년이었는데 그게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았는지 그때부터 일부러 찾는 손님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20년 이상 꾸준히 사랑받는 비결이 있을 것 같아요.

싱거운 답이지만 모든 재료를 정말 정성껏 준비하거든요. 어머니께서는 팥을 씻는 과정부터 엄격하게 관리하세요. 안 좋은 팥을 걸러 내고, 정성을 다해 깨끗하게 씻은 다음 저희 가게만의 노하우를 담아 삶아 내지요. 다른 집보다 좀 더 부드러운 식감을 추구합니다. 음식은 무엇보다 간이 중요하잖아요. 빙수에 어울리는 팥, 죽에 어울리는 팥에 적당한 단맛을 더해 정성껏 삶아 내어드리는 게 비법이 아닐까요? 또 예전부터 1년 365일 문을 안 닫았어요. 그 성실함과 꾸준함, 언제 와도 문이 열려 있는 친근함에 계속 발길을 이어주는 것 같아요.

어머님이 장사 선배이기도 한데요. 가장 큰 가르침은 무엇이었나요?

매일 가게를 마치면 어머니 뵈러 갑니다. 그러면 늘 ‘팥을 어떻게 삶았노?’ ‘내가 하라는 대로 했노?’라고 물으십니다. 한창 여름 성수기에는 하루 수천 그릇을 팔고, 40kg 팥을 10포대 이상 삶기도 하는데요. 오랜 시간 단일 재료로 똑같은 메뉴를 만들다 보면 관성에 젖기 쉬운데 어머니는 늘 처음처럼 기본을 지키십니다. 맛을 내는 것은 기본이고, 여전히 잘 씻었냐고 물으신다니까요. 정말 본받을 점이에요.

2대로 넘어오면서 새롭게 변화한 점도 있나요?

저뿐만 아니라 동생(박재우 씨)도 함께 가게를 잇고 있거든요. 새로운 메뉴를 고민하면서도 저희 가게의 뿌리인 ‘팥’은 지키고 싶었어요. 그렇게 4년 전부터 팥소가 들어간 붕어빵을 겨울 메뉴로 출시하고, 팥빙수도 우유 대패 빙수를 추가했죠. 전통 얼음 팥빙수와 비교하며 함께 주문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한편 동생은 더 많은 사람들이 좀더 가깝게 저희 팥빙수와 단팥죽을 즐길 수 있도록 직영점 오픈에 힘을 썼습니다. 덕분에 남구 용호동 본점뿐 아니라 중구 남포동, 수영구 수영동, 해운대구 좌동의 직영점과 부전동 롯데백화점 입점 매장에서 할매팥빙수단팥죽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역시 고객들이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볼 때죠. 집이 울산인데 부산에 오실 때마다 수십 년째 저희집에 오시는 목사님도 계시고, 부모님이 입원하셨는데 저희집 단팥죽이 아니면 안 된다고 포장해가신 손님도 있죠. 문을 닫는 시간에 오셔서 정말 먹고 싶다고 사정을 하신 손님을 뵈면 고마운 마음이 더 커요. 저희 가게가 입지가 좋은 편이 아니거든요. 시장에서 한참 들어와야 만날 수 있는 곳인데 이렇게 일부러 찾아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오랜 단골이 많아 정이 넘쳐요. 예전 한창 바쁠 때는 손님들이 직접 주방에 들어와 자기 그릇을 설거지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죠. 오래된 가게만이 누릴 수 있는 끈끈한 정이 아니겠어요.

중소벤처기업부가 인증하는 ‘백년가게’로 선정되었습니다. 소감과 함께 앞으로의 목표도 말씀해주세요.

오래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 꾸준함을 이어가는 게 2대 경영인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크게 일을 벌일 욕심은 솔직히 없습니다. 단, 이 가게 하나만큼은 끝까지 지켜내는 게 제 꿈이지요. 지금 50대 중반의 나이인데 60대, 70대가 되어서도, 혹시 자식이 대를 잇는다면 기꺼이 이끌어주면서 정말 백년가게로 만들고 싶습니다. 팥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고 꾸준한 맛을 지키겠습니다. 언제든 문을 열어두겠습니다.

부산 용호동할매팥빙수단팥죽 본점
· 주소 : 부산 남구 용호로90번길 24 1층 102호
· 전화 : 051-623-9946
· 영업시간 : 09:00~22:00(하절기에는 23:00까지, 연중무휴)
· 주요메뉴 : 팥빙수, 단팥죽, 팥붕어빵, 대패 밀크 팥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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