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1

56년 전통, 제대로 된
중국요리로 초대합니다

도일처 진가기 대표

사연 없는 이가 어디 있겠냐만 고향과 가족을 떠나 타국에 자리를 잡은 화교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구구절절하다. 이념 전쟁이 한창이던 1948년, 징집을 피해 대한민국에 닿은 열여덟 중국 청년도 마찬가지였다. 금방 돌아가리라 생각했지만 곧 배가 끊기고 국교마저 단절된 막막한 상황 속에서 중국요리는 단순한 생계 수단 이상이었다. 고향 옌타이(연태)를 떠올리는 향수이자 그리움이고, 언젠가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한 가닥이기도 했다. 어느덧 56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음식점 ‘도일처’를 일군 진학순 창업주가 요리 하나하나에 진심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1966년부터 김포공항 입구를 지킨 도일처는 이제 아들 진가기 대표가 그 명성을 잇고 있다.

1966년부터 한 자리, 정통 중식의 맛

“아버지께서 이것만은 변치 말고 팔아야 한다고 강조한 메뉴가 딱 세 가지에요. 동파육, 수제군만두 그리고 중국 냉면. 셋 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요리거든요. 요리에 대한 진정성을 차별화 전략으로 삼은 셈이죠.”

창업 당시부터 시그니처 메뉴로 가게의 성격을 명확히 한 도일처는 중국요리를 제대로 맛보고 싶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가는 가게로 이름을 굳혔다. 브레이크타임에 모든 직원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커다란 수제 만두를 빚는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음식을 향한 이 고집스러움 덕분에 2대째 이어진 ‘도일처’는 중국요리 맛집으로 대한민국 서울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동파육과 중국냉면, 시그니처 메뉴로 승부

도일처는 1966년부터 한 자리를 지킨 중국요리 전문점입니다. 어떻게 공항 근처에 자리잡게 되었는지 창업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중국 옌타이 출신 아버지가 한 달 동안 배를 타고 한국에 오신 게 열여덟 살이었어요. 잠깐 돈을 벌고 돌아갈 줄 알았는데 그대로 눌러앉을 수밖에 없었죠. 화교들이 가장 쉽게 일하던 곳이 중국 요리점이잖아요. 아버지도 그렇게 시작해 종로, 명동에 가게를 3개나 운영할 정도로 규모를 키웠습니다. 하지만 세를 얻은 가게라 정리를 하고 60년대 주목받던 상권으로 꼽힌 공항 입구에 내 가게를 차리신 거죠. 외국인은 아무래도 제약이 많으니 어머니 이름으로 문을 열고 함께 운영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진성반점’으로 출발했는데 좀 더 특별하고 오래 갈 수 있도록 ‘도시에서 유일한 곳’이라는 뜻의 ‘도일처’로 상호를 변경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중국 건륭황제가 반해 직접 이름을 지어줬다는 베이징의 만두집과 같은 이름이에요. 위치도 변함이 없어요. 당시에는 단층의 긴 공간이었는데 도로 정비로 좁아진 대신 2층이 생겼습니다.

대표님은 어떻게 가게를 잇게 되었나요?

대만에서 공부한 후 현지에서 취업해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날 아버지가 많이 아프다며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하셨어요. 부랴부랴 정리하고 왔더니 한 달 만에 멀쩡해지셨죠. 반은 속은 거고, 반은 언젠가 내가 이어받으려니 했으니 운명이었죠. 그렇게 1993년, 스물여덟 살부터 도일처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평범한 직장인에서 중국요리 전문점을 맡게 되었는데요. 그만큼 더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셨을 것 같습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방학이면 가게 일을 도왔기 때문에 기본기는 있었어요. 하지만 전문성을 높이고 싶어 정식으로 2년을 더 배웠죠. 아버지와 함께 중국을 종종 오갔는데 고향인 옌타이에서 음식 축제를 크게 벌이더라고요. 당시 ‘옌타이 노포요리 축제’가 있어 가봤더니 양장피, 탕수육, 난자완스, 팔보채 등의 요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한국 중국집 메뉴는 막상 중국에 가면 없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중국집 요리의 원류를 찾은 것 같아 반가웠죠. 마침 자격증을 딸 기회가 있어 그 요리들로 3등급 요리사 자격증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56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다른 중국음식점과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버지가 이것만은 꼭 팔아야 한다고 강조한 동파육, 수제 군만두, 중국냉면은 도일처에서만 만날 수 있는 맛을 자랑합니다. 동파육의 경우 무려 4시간을 쪄서 통삼겹 형태로 내는데요. 보통 썰어서 나오는 동파육과 달리 손님이 직접 잘라 먹는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육질도 훨씬 부드럽습니다. 군만두는 일일이 손으로 빚습니다. 공장에서 가져오는 순간 문 닫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다행히 손님들이 먼저 그 맛을 인정해주십니다. 중국냉면은 추석 전까지 먹을 수 있는 여름 별미인데요. 가죽나물과 땅콩소스가 꼭 들어가야 합니다. 봄이 되면 강화에서 나는 가죽나물을 사서 소금에 절여 놓는 일부터 시작하죠. 이 세 메뉴만 제대로 만들어도 대대손손 가게를 이어갈 수 있을 거라 강조하셨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기본 메뉴 이외에는 다양한 시도를 허락하셨는데요. 저는 소룡포 등 수제 만두 6가지를 새롭게 선보이고, 해물누룽지와 같은 철판요리도 발전시켰습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가장 큰 가르침은 무엇이었나요?

화교 출신인 아버지는 한국인인 어머니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지만 이방인으로서 늘 고민이 깊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불이익을 당한 사례도 있고요.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어요. 괜한 자존심을 세우지 말고 동네 사람들이며 같은 업종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한다고요. 방화동 중국음식점 종사자 모임을 통해 이웃 경로당에 짜장면을 제공하는 봉사를 펼치는 것도 그 이유이죠.

가게 운영에 있어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요?

코로나19가 가장 힘들었지만 직원들이 잘 버텨줘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20년, 15년 동안 함께한 직원이 있어요. 보통 10년을 함께 일할 정도로 이직률이 낮은 편이죠. 직원을 보물이라 생각하는 게 비결이 아닐까요. 직원들과 한마음으로 뭉치면 힘든 일도 함께 이겨내고 오래 갈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월급을 아끼지 않고, 급여 이외에 경조사를 잘 챙기며, 집을 살 때면 1~2천만 원씩 지원해줍니다. 10년을 함께 일했는데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잖아요.

‘백년가게’ 선정이 더 뜻깊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진짜로 100년을 채우고 싶습니다. 현재 외식경영을 공부한 아들이 함께하며 동파육과 만두 밀키트를 개발하고 있고, 백화점 입점 제의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어요. 너무 큰 확장보다는 소박하게 도일처만의 자부심과 메뉴를 지켜가면서 100년을 채우도록 하겠습니다.

도일처

· 주소 : 서울 강서구 개화동로 567(방화동)
· 전화 : 02-2662-2322
· 영업시간 : 11:10~21:00(브레이크타임 15:00~16:30 /첫째, 둘째, 셋째 월요일 휴뮤)
· 주요 메뉴 : 동파육, 만두, 탕수육, 중국냉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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