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1

숯불 향 가득, 믿고 먹는 족발

장군식당 이상호 대표

30년 넘게 이어온 ‘백년가게’를 찾는 일은 꽤 설레는 일이다. 버텨온 세월만큼이나 단단한 내공에 늘 고개가 숙여진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시대에 맞게 변해온 과정을 한눈에 다 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1988년 개업한 월계동 장군식당의 풍경을 2022년 11월에 남기는 일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가게 절반이 장위 뉴타운 재개발 구역에 들어가며 결국 철거할 수밖에 없는 상황. 많은 이들이 쫀득한 족발을 안주 삼아 술 한잔을 기울이던 석계역 아지트가 사라지는 것일까?

자리는 그대로, 새 건물에서 3막 시작

“다행히 가게 절반은 남습니다. 석계역 바로 앞에서 10년, 이 자리에서 24년 장사를 했어요. 자리를 쉽게 옮기고 싶지 않아 남은 절반의 터에 5층 건물을 올릴 생각입니다. 올해 말까지 가게를 비우고, 부지런히 신축 공사를 시작하면 내년에는 새 건물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그사이에도 배달?포장은 이어갈 생각입니다.”

이상호 대표는 추억이 담긴 가게가 사라진다는 아쉬움을 털어내고 변화를 긍정적으로 맞이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지금의 자리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데 만족한다. 곧 허물어질 가게이지만 무려 24년 한 자리를 지켜왔기에 그 마지막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도 특별하다고 웃어 보이는 이상호 대표. 섭섭함이 왜 없을까. 하지만 언제나 변화를 더 큰 기회로 살려온 그이기에 2023년 다시 태어날 장군식당에 기대감이 높아진다.

숯불족발과 칼국수의 환상 조합

1988년부터 족발을 전문으로 하는 장군식당을 열었습니다. 어떻게 가게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원래는 대학 졸업 후 해기사 자격증을 따서 외항 상선을 탔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울면서 가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배에서 내리게 됐죠. 일단 먹고 살기 위해 작은 구멍가게에서 토큰 파는 일을 시작했는데 당시 옆집이 족발 가게였어요. 무작정 가르쳐달라고 부탁해 1년을 배운 다음 창업한 가게가 장군식당입니다. 당시 석계역은 막 개발되던 시기라 아무것도 없었어요. 동신아파트 하나와 인근에 연탄 공장만 자리했었죠. 오히려 가게가 별로 없으니 초창기에 장사가 잘됐습니다. 10년 쯤 되어 이제 좀 자리를 잡으려고 하니 건물주 본인이 장사를 하겠다며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권리금도 못 받고 나왔어요. 다시 가게를 알아보는데 단골들을 위해서라도 전화번호를 바꾸기 싫었어요. 결국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의 주택을 사서 조금씩 터를 넓힌 게 지금 모습입니다.

족발 하나로 34년 동안 개인 매장을 이어온 게 놀랍습니다. 특히 숯불 족발 메뉴가 눈에 띕니다.

처음에는 남들처럼 오향족발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젊은 사람 중에는 그 향을 싫어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어떻게 변화를 줄까 고민하다가 집에서 숯불에 구워보니까 그 맛이 괜찮더라고요. 본격적으로 연구한 끝에 삶은 족발을 그릴에서 1차로 굽고, 참숯으로 한 번 더 구워 향을 입혀 내놓게 됐습니다. 사실 일반 족발보다 공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만큼 담백하고, 참숯 향이 은은하게 입혀져 손님들이 좋아해 주세요. 그에 보답하여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껍질이 쫀득하면서도 바삭하고, 인공적인 단맛이 없이 담백해서 더 손이 가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기본적인 향신료에 대추, 사과, 파인애플, 대파 등을 넣고 삶아내거든요. 요즘은 달게만 만드는데 저희는 설탕을 쓰지 않고 감초를 사용해 단맛을 내기 때문에 텁텁하지 않아요. 근데 여기 놀라운 비법이 또 있어요. 이 육수가 1988년도부터 이어져 온 명물이에요. 씨간장처럼 육수 엑기스를 계속 활용해 맛이 더 깊습니다. 그만큼 철저하게 위생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어요. 족발집을 오픈하는 친구가 이 육수를 얻어가기도 할 만큼 자긍심을 갖고 이어가는 육수입니다.

기본으로 칼국수가 폼함되는 것도 특별합니다. 보쌈도 메뉴도 인기가 많다고요.

어떤 손님들은 칼국수 맛집이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해요. 직접 육수를 낸 국물이라 깔끔하고 시원해요. 든든한 한 끼를 제공하기 위해서 마련한 메뉴죠. 요즘 많이 사라진 보쌈 메뉴도 인기입니다. 보쌈은 매일 김치를 담가야 하기에 번거로워서 개인 자영업자는 피하는 메뉴거든요. 저희는 오늘도 보쌈김치를 담갔습니다. 자부심을 가지는 부분이에요. 내 손으로 일일이 신경을 써서 대접하면 확실히 손님들이 먼저 알고 인정해주세요.

기억에 남는 손님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저와 함께한 종원업과 아르바이트생이 1,000여 명 정도 됩니다. 그들이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오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해요. 한 번은 배달하다 오토바이를 잃어버린 친구가 있었는데요. 결혼하고 부인하고 함께 찾아왔더라고요. 그때 혼내지 않고 다독여줘서 정말 고마웠다고요. 저는 그 친구들이 돈을 벌어준다고 생각해요. 저와 아내는 주방을 책임지느라 카운터와 홀은 아르바이트생에게 온전히 맡겼거든요. 주변 사람들이 불안하지 않냐고 했는데 저는 믿음이 가더라고요. 그렇게 서로 믿으니 사고도 한번 없었고요. 제가 복 받은 게 아니겠어요? 어엿한 직장인이 되고, 대학 교수도 되어 다시 찾는 모습을 보면 내가 그래도 잘 운영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재개발로 지금의 가게는 사라지지만 곧 근사한 건물로 다시 만날 것 같습니다. 백년가게로서 큰 변화인데요. 각오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좀 더 멀리 내다보면 오히려 잘 된 변화라고 생각해요. 아들이 본격적으로 가게를 이을 계획인데 새로운 건물에서 야심차게 함께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들에게 강조하는 점은 두 가지에요. 첫째, 꾸준하고 부지런해라. 귀찮다고 해서 양념을 하루 이틀 거르면 맛이 다르거든요. 둘째, 종업원을 식구처럼 대하라. 서로 믿고 정이 오가는 관계라야 가게 운영이 잘 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변화가 더욱 기대됩니다.

34년 동안 한 업종을 이어오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아마 돈을 너무 많이 벌었어도 그만두고, 너무 못 벌었어도 그만두지 않았을까요. 근근이 먹고살 만해서 이만큼 이어온 게 아닐까 싶어요. 너무 과한 욕심은 부리지 않고 내년에는 완전히 새로워진 장군식당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동안 포장, 배달은 이어가니 걱정 안 하셔도 되고요. 맛도 변함없이 지켜가겠습니다.

장군식당

· 주소 | 서울 노원구 화랑로43가길 27
· 전화 | 02-941-5882
· 영업시간 | 17:00~23:00
· 주요 메뉴 | 숯불족발, 매운숯불족발, 보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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