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1

서점이 궁금해
속초로 떠난다고요?

동아서점 김영건 대표
동아서점

속초 여행이라고 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바다와 산, 호수, 전통 시장과 맛집, 카페가 줄줄이 따라 나온다. 사실 대한민국 어떤 도시이든 비슷하게 요약되는 여행 패턴이지 않을까. 그런데 어느 날부터 ‘속초 여행’과 ‘서점’이 함께 묶이기 시작했다. 여행지에서 꼭 들러야 한다는 서점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책이 아닌 더 특별한 무엇이 있는 게 아닐까? 무려 1956년 문을 열어 3대째 이어지고 있는 속초 ‘동아서점’이 그 답을 전해준다.

1956년 문을 연 서점, 3대째 잇다

속초시 교동에 자리한 동아서점은 ‘진짜’ 서점이다. 문구와 음반, 생활용품까지 섞인 도심의 대형서점과 다르고, 음료를 함께 파는 북카페와도 다르다. 주인의 취향과 개성만을 압축해 놓은 소규모 독립서점과도 결이 다른 공간. 동아서점은 고집스럽게 오직 책으로만 채워져 있다. 무엇보다 김영건 대표가 엄선하여 큐레이션한 일반서적과 각종 참고서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요즘 좀처럼 보기 드문 중형 종합서점의 면모를 제대로 갖춘 것이다.

2015년부터 동아서점을 도맡아온 김영건 대표와 아내 이수현 씨는 매주 신간을 찾아보며 일일이 주문을 넣는다. 때론 자신의 취향을, 때론 손님들의 취향을 반영한 책이 동아서점을 차곡차곡 채운다. 새 책 특유의 냄새와 질감을 즐길 수 있는 곳, 우연히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곳, 내가 모르는 세상 사이를 눈치 보지 않고 누빌 수 있는 곳. 동아서점은 이렇듯 책 하나로 속초 시민들과 여행객을 동시에 사로잡는다.

책으로 속초의 낭만을 깨우다

동아서점은 1956년 문을 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생긴 서점이 지금껏 이어져 온다는 게 놀랍습니다. 어떻게 출발했는지 들려주세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속초는 한동안 어수선했어요. 소련 군정이었다가 남한으로 수복된 지역으로 실향민이 정착하며 생겨난 도시이니 여러모로 물자가 부족했습니다. 특히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학용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죠. 그래서 당시 동아일보사 속초 주재기자였던 할아버지(故 김종록 창업주)가 1956년 동아문구사를 열었고, 1966년에는 교과서, 일반서적, 잡지 등을 놓고 동아서점으로 상호를 변경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서점의 위상과 풍경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중형서점이 거의 다 사라지고, 최근에는 북카페나 독립서점이 생겨나는 추세이지요. 동아서점은 규모를 유지하면서도 살아남은 지방의 중형서점이라는 점에서 특별한데요. 그 변천사가 궁금합니다.
1970년대 아버지(김일수 씨)께서 서울에서 대학 재학 중, 할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져 잠깐 도와드리려 내려왔던 게 아예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서점을 이끄셨는데 대한민국 전체가 성장하던 시기잖아요. 1980~90년대는 잡지, 만화책, 참고서를 중심으로 서점이 호황을 누리던 시대였죠. 제가 기억하는 1990년대만 해도 서점에 아이큐, 점프, 소년챔프 등 만화 주간지가 나오는 날이면 사람들이 늘어섰고, 월말 결제일이 되면 출판사 영업사원이 줄을 서서 처리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온라인 서점이 생겨나면서 전국 서점이 쇠락의 길로 들어섰고, 2010년도 즈음에는 매장의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고 할 정도였어요. 문제집이나 참고서만 겨우 팔 정도였죠. 아버지도 언제 문을 닫아야 하야 고민하던 시기에 저에게 연락을 주셨죠. 2014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저는 서점을 같이 해보지 않겠냐는 아버지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어요. 사실 서울에서 언제 돈 벌어 가정을 이루나, 고민하던 시기에 도피하듯 속초로 온 셈이죠. 나중에 들었는데 언젠가 제가 속초에 내려와서는 ‘서점 문을 닫게 되면 저에게 꼭 말해달라’고 아버지께 부탁했다고 하더라고요.

기존 서점을 물려받은 게 아니라 대대적인 리뉴얼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동아서점을 탄생시켰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변신을 꾀했나요?
아버지께서는 아들과 동아서점을 서점답게 운영하고 싶은 꿈을 갖고 이미 리뉴얼을 염두에 두셨더라고요. 일단 매장을 키우고, 주차장을 확보할 수 있는 곳으로 이전했죠. 서점 리뉴얼은 기존 서점을 운영하면서 느낀 단점을 보완하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서가와 서가 사이의 폭이 좁고, 책이 빽빽하게 들어찬 공간을 쾌적하고 널찍하게 탁 트인 공간으로 바꿔 좀 더 머무르고 싶게끔 했죠. 가장 중점적으로 변화를 준 부분은 책이에요. 기존에는 단행본보다 참고서와 문제집 위주였는데 이를 역으로 단행본 80%, 학습지 20% 비율로 무모할 정도로 확 바꿨죠. 서점다운 서점을 만들고자 했던 의지가 강했어요. 또 120평이면 중형급 서점으로 판매가 잘 되는 책 중심으로 도매상에게 자동으로 배본받고 반품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거든요. 하지만 2015년 리뉴얼 오픈 당시부터 저와 아버지가 일일이 주문한 2만 권으로 시작했어요. 지금은 4만 권 정도 되는데 모두 직접 주문한 책이죠.

서점 주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책들인데요. 책을 주문하고 배치할 때, 어떤 기준이 반영되는지 궁금합니다.
동아서점을 찾는 분들의 성향과 저희가 소개하고픈 책을 균형 있게 담아내려고 합니다. 보통 서점은 마케팅 의거하거나 판매 순위에 따라 진열하는데요. 저희는 눈여겨본 책, 좋아할 것 같은 책을 전면에 진열하기 때문에 다른 서점에서 못 본 책이 많다고 하세요. 매주 약 50~100권 정도의 신간을 주문하는데요. 고르는 게 쉽지만은 않아요. 각종 출판사 보도자료와 신문사 책 소개 칼럼 등을 눈여겨보고 출판사 SNS를 통해서도 정보를 얻죠. 독자들이 ‘책이라는 게 고작 이런 거야?’라는 생각이 안 들도록 신뢰를 줄 수 있는 좋은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종종 특별전도 열고 있어요. 현재는 출판사 사계절과 함께 ‘속초의 여름빛’이라는 전시(7월 8일~9월 2일)를 열고 있어요. 여름 그림책과 문학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고, 특별 굿즈도 얻을 수 있으니 편하게 들러보세요.

책을 통해 서점을 찾는 손님들과 적극적으로 교감하는 모습입니다.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나요?
작년에 손님 한 분이 글을 남기고 갔어요.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서점을 운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요. 서점을 운영하며 힘들 때마다 내가 너무 고지식하게 운영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는데요. 언제 와도 변하지 않는 우직한 공간임을 알아주셔서 감사했죠. 또 한 달에 한 번 제법 많은 책을 꾸준히 사가는 고객이 있는데요. 4년 동안 모아둔 적립금을 한 번도 안 쓰시더라고요. 그래서 여쭤봤더니 동아서점이 좋은 책을 소개해주니 돈을 지불하고라도 오고 싶은 마음이라며, 적립금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곳에 써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감동이었습니다.

서점을 꾸준히 찾는 분들도 계시지만 온라인 서점의 강세는 여전하고, 오프라인 서점은 위기라고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그런데도 서점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책은 생필품이 아니에요.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즐기는 것과 달리 집중력이 필요한 지루한 매체일 수도 있고요. 또 서점에 와서 들춰보기만 하고 안 사도 됩니다. 본질적으로 책을 판매하는 어려움은 늘 있어요. 매출을 안정화하는 게 가장 큰 숙제이죠. 그렇다고 책 이외의 다른 요소를 더하고 싶지는 않아요. 서점이라는 곳이 사람들에게 의미가 없다면 사라지는 게 맞겠죠. 하지만 아직 충분히 의미가 있기에 존재하는 거 아닐까요? 책이라는 매체는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그 책을 중심으로 가지각색의 군상이 모이는 공간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중소벤처기업부 인증 백년가게로 선정되었습니다. 60년 넘게 이어온 서점의 가치가 잘 담긴 타이틀인데요.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일군 67년이라는 세월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앞으로의 33년을 안정적으로 책임감 있게 이끌어야죠. 동아서점을 아껴주시는 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서점이 되는 것, 매일매일 무사히 잘 운영하는 게 목표입니다.

속초 동아서점

· 주소 | 강원 속초시 수복로 108
· 전화 | 033-632-1555
· 영업시간 | 09:00~21:00(일요일 휴무)
· 인스타그램 | @bookstoredon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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