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2

봉사명장의
착한 안경원

속초 천일안경원 김상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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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는 착한 안경원이 있다. 손님들에게 딱 맞는 좋은 안경을 맞춰주는 건 기본, 누구나 편하게 들르는 무료 쉼터이자 무료 카페로도 소문이 자자하다. ‘남을 위해 살다 죽다’를 일찌감치 묘비명으로 정해두었다는 천일안경원 김상기 대표의 신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장학사업부터 의료지원까지 자신의 아픈 상처를 사회공헌활동으로 치유해온 그는 ‘봉사명장’에 올라 더 큰 나눔을 펼치는 중이다.

가난의 상처, 베풀며 치유해요

1?4후퇴 때 아들, 딸만 데리고 남으로 피난 온 아버지는 고향과 가까운 속초에 자리를 잡았다. 곧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이 완전히 닫히자 남에서 다시 가정을 꾸려 얻은 자식이 천일안경원 김상기 대표다. 제대로 된 기반 없이 정착한 남쪽 생활은 가난의 연속이었고, 입학금 만 원이 없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그에게 까만 교복은 내내 상처가 되었다.

“친구들은 학교에 가는데 저는 공장에서 일하니 얼마나 부러웠겠어요. 점심시간에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놀다 공장으로 돌아오기도 했어요. 그러다 18살에 강릉 이모님 댁에서 사진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마침 여고 졸업사진을 보조하는데 서러워서 앵글이 잘 안 잡히더라고요. 이후 그만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10대 소년의 상처를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김상기 대표는 이 상처를 분노나 좌절이 아니라 베풂으로 치유해갔다. 공장에 다니면서도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일일 찻집에 열어 연탄배달 봉사를 한 그였고, 학창 시절의 아픔을 알기에 훗날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장학금 지원 사업을 꾸준히 펼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사회공헌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위해 일찌감치 설립한 한국늘사랑회와 한국늘사랑장학재단은 가진 게 많아서가 아니라 상처를 들여다볼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이 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1981년 창업해 현재까지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는 천일안경원도 남을 위해 살고자 하는 그의 신념과 궤를 함께한다.

“안경원을 운영하는 친척 밑에서 직원으로 일하다 군대를 제대하고 친척의 가게를 인수해 창업했습니다. 돈이 어디 있겠어요. 대출을 받을 때 동네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보증을 서줘 가능했습니다. 참 고마운 일이죠.”

김상기 대표는 안경 모양과 비슷한 숫자(1001)인데다 종교적 의미까지 더할 수 있는 ‘천일안경원’을 상호로 삼았다. 가난의 돌부리, 자살의 돌부리에 넘어지지 않고 끝내 일어선 그는 긍정의 마음으로 세상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수입이 발생하자 더 적극적으로 봉사에 뛰어드는 건 물론이다. 1983년부터 심장병, 백혈병, 뇌성마비 등을 앓는 소외계층에게 치료와 수술을 지원하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과 노인들에게 안경을 무료로 제공해왔다. 해외로도 뻗어나가 보청기 봉사단과 협업해 중국, 필리핀, 캄보디아 등에서 시력 및 청력 무료검진과 수술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42년 전통, 고객 눈높이에 맞춰야죠

속초 천일안경원은 굳이 안경이 필요하지 않아도 들를 수 있는 시민의 공간이다. 누구나 쉴 수 있는 무료 쉼터가 있고, 무료 카페가 있으며, 무료 휴대폰충전기에 개방형 화장실에는 생리대까지 비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과 이웃들이 몸과 마음을 편하게 기댈 곳이었으면 해서 안경원의 문턱을 아예 없앤 것이다. 물론 42년 전통을 지는 안경원답게 전문성도 놓치지 않는다.

“고객 눈높이에 맞추는 게 중요하죠. 일단 절대로 질 나쁜 안경테와 렌즈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내 가족이 쓴다고 생각하면 절대 그럴 수 없죠. 가격이 조금 비쌀 수는 있어요. 하지만 다른 안경원을 갔던 사람도 ‘역시 천일’이라며 다시 돌아오죠. 매장이 오래된 만큼 손님들의 연령대가 높거든요. 그들의 니즈에 맞추기 위해 다초점 렌즈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안경은 기술 발전이 빠른 분야인 만큼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도 중요하다. 김상기 대표는 임상 경험은 풍부하지만 최신 안경공학 기술은 놓치기 쉬운 숙련된 직원들을 대상으로 꾸준하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최초로 근시 진행을 늦춰주는 특수렌즈를 도입한 것 역시 전통은 살리되 뒤처지지 않고 기술을 선도하는 안경원을 만들기 위해서다.

“안경을 맞추러 학생들이 많이 오잖아요. 제가 10대 때 받은 상처를 알기에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상담을 시작했어요. 뒤늦게 심리상담학 박사도 취득하고요. 문제아라 불리는 친구들도 들여다보면 각각 사연이 있거든요. 누군가는 감싸 안고 가야 하잖아요.”

김상기 대표를 통해 진짜 어른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여전히 학교폭력심의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는 그는 학생들이 아프지 않고,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명을 다한다. 소외된 이웃을 위한 음식 나눔과 저소득가정 학생 교복 맞춰주기, 결식아동 도시락 전달, 청소년 심리 상담 등 그의 활동은 일일이 헤아릴 수가 없다.

봉사명장, 죽을 때까지 나누렵니다

김상기 대표는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단숨에 달려간다. 군대 시절, 선임의 지독한 폭력을 힘겹게 견딘 경험을 발판삼아 군부대에 강의를 나가고, 수천만 원 상당의 고글을 위문품으로 준비하곤 한다. 흙수저의 치열한 삶을 산 그의 이야기는 교도소 강의에서도 진정성을 발한다. 무엇보다 일회성 강의로 끝내지 않고 필요할 때 언제든 연락하라며 명함을 두고 오는 게 그의 소통 방식이다. 생명을 놓을 만큼 힘든 시기를 겪었기에 누군가에게 희망의 끈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제가 이렇게 나누고 봉사하며 살 수 있는 것도 다 좋은 인연 덕분이라고요. 6?25에 참전한 터키와 필리핀의 참전 용사들에게 안경과 보청기를 지원하고, 수술이 필요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손자 4명을 한국으로 초청한 것도 좋은 인연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활동을 이해하고 함께해준 아내 김귀녀 씨에 대한 고마움을 빼놓지 않는다. 미용 기술을 지닌 아내는 미용 도구를 챙겨 어르신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이어간다. 김상기 대표는 자신에 이어 아내도 봉사명장에 올라 최초의 부부 봉사명장이 탄생하길 꿈꿔본다.

“저를 위해 욕심부릴 건 없어요. 이미 장기 기증은 물론 시신 기증까지 신청해뒀는걸요. 다만 지금껏 해온 활동을 더 굳건하게 이어가고 싶어요. 형사재판에 선 청소년을 위한 국선보조인으로 10년 가까이 활동했는데 꾸준히 이어가며 교화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없는 청소년을 위해 주거공간을 마련하고, 누구나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문화공간도 조성도 목표 중 하나죠. 안경원이요? 다행히 아들이 안경공학을 전공해 안경원을 운영하고 있거든요. 나이가 들면 천일안경원을 잇지 않겠어요?”

김상기 대표와 아내 김귀녀 씨는 매일 저녁 청초호 사잇길을 걷는다. 처음에는 두 사람만 걷던 일이 이제는 ‘봉사명장과 함께하는 건강사잇길 걷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고민이 있거나, 그냥 즐겁게 저녁을 보내고 싶다면 관광객이든, 속초시민이든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좋은 풍경을 좋은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시간, 이 소소한 추억이 퍽퍽한 일상에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김상기 대표는 끊임없이 주변을 돌아보며 오늘도 이웃과 함께한다.

천일안경원

· 주소 | 강원 속초시 중앙로 122 1층
· 전화 | 033-633-9191
· 영업시간 | 09:0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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