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3

헤어디자인부터 두피관리까지 자신있어요

광주 기맹례헤어숍 기맹례 원장

미용과 패션만큼 유행이 빠르게 변하는 영역이 있을까? 한 해는 물론이거니와 계절마다 스타일이 달라지는 빠른 속도감에 아찔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미용 외길을 걸어온 기맹례헤어숍의 기맹례 원장은 부지런히 공부하면 답이 있다고 말한다.

자신 있게 이름을 내건 기맹례헤어숍

“유행은 시대에 따라 빠르게 변하는데 가만히 넋 놓고 있다 보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스타일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게 되거든요. 저는 지금까지 공부를 놓아본 적이 없어요. 여전히 세미나에 참석하고, 주변 원장님들과 교류하면서 변화와 새로움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1991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헤어숍을 오픈할 때부터 기맹례 원장은 무조건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고, 스스로를 다잡는 다짐이기도 했다. 헤어와 메이크업을 두루 섭렵하고, 이제는 두피케어를 접목한 서비스까지 더해 차별화에 나선 기맹례헤어숍. 30년 동안 자리는 옮겼어도 찾아오는 손님은 여전하다. 한번 머리를 맡기면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믿을 수 있는 헤어숍이 광주 백운동에 자리를 틀고 있다.

공부하고 변화하며 성장한 30년

헤어 디자이너는 어느 정도 기본기를 닦은 후 창업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창업 스토리 전에 어떻게 미용 쪽에 관심을 갖고 발을 들였는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의 머리를 땋아주고, 잘라주는 걸 잘했어요. 미용 쪽에 관심도 많고 소질도 있었지만 선뜻 나서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내내 마음에 품고 있었나 봐요. 졸업 후 서울 명동에 위치한 무역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일주일 만에 그만두고 그 옆에 있는 정화미용학원에 등록했거든요. 당시만 해도 미용 일을 하면 팔자가 사납다는 편견이 있어 아버지가 반대를 많이 하셨는데 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오전에는 학원에 다니고 오후에는 미용실에서 일하며 실력을 닦아나갔죠. 그렇게 서울에서 3년을 일 하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말을 듣고 광주로 내려왔어요. 광주의 미용실에서 일을 이어 가다 내 가게를 열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1991년, 원장님의 이름을 내건 기맹례헤어숍을 오픈하셨죠.

내 가게를 너무 갖고 싶었어요. 기능대회에서 상도 타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기술을 익혔기 때문에 내 가게라면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한눈팔지 않고 정말 잘할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스물일곱 살에 충장로3가에 첫 가게를 열었습니다. 실은 겁 없이 뛰어든 거죠.

시내 중심가 입지는 경쟁이 치열했을 것 같은데요. 원장님은 어떤 경쟁력으로 승부하셨나요?

제가 지는 걸 싫어하고,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걸 즐겼어요. 제 미용실을 연 후에도 공부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때에 따라 학원도 다니고, 밤에 일이 끝나면 잘하는 분을 쫓아다니면서 무조건 배웠어요. 한발 빠르게 배워야 뒤처지지 않더라고요. 1999년에는 미용기능장 자격증도 취득했어요. 전국에 기능장이 몇 명 없을 때인데요. 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거든요. 밤늦게까지 학원에 다니며 익힌 끝에 미용기능장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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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 미용 트렌드의 변화를 현장에서 체감하셨을 텐데요. 1990년대와 2020년대 헤어트렌드는 무엇이 가장 많이 바뀌었나요?

아무래도 염색이 되겠지요. 90년대만 해도 염색은 포인트로 가볍게 하는 수준이었는데 최근에는 그 색이 다양해졌습니다. 표현하지 못하는 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저 역시 고객이 원하는 색을 모두 표현할 수 있도록 익혔습니다. 또 두피와 모발 건강에 관심이 높아진 점도 큰 변화 중 하나입니다.

두피케어 서비스를 새롭게 선보인 것도 이런 변화에 발맞춘 시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 도전하길 좋아하니까요. 제가 도입한 V스칼프케어는 쳐진 두피 근막을 팽팽하게 관리해주는 기술로 빈모를 줄이고, 얼굴의 쳐짐까지 잡아줍니다. 두피와 모발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동시에 피부의 안티에이징까지 돕는 케어입니다. 뿌리 볼륨도 더 생생하게 살고요. 헤어디자인과 페이스디자인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헤어숍의 역사가 긴 만큼 기억에 남는 단골도 많을 것 같습니다.

충장로3가에서 오픈한 뒤 광산구 신가동으로 이전을 한번 했고, 현재 남구 백운동으로 옮긴 지는 5년이 되어갑니다. 자리를 옮길 때마다 저를 믿고 찾아와주시는 고객들이 대부분이에요. 아가씨 때부터 봤던 손님들이 이제는 중년이 되어 찾아오고, 초등학교 때부터 봤던 꼬맹이가 결혼한다고 나타날 때는 깜짝 놀라기도 하죠. 결혼 후 광주를 떠났어도 1년에 두세 번은 꼭 저희 숍에서 머리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다 언니고, 동생이고, 이모, 삼촌입니다. 가족 같아요. 제가 새로운 스타일을 연구할 때면 손님들이 기꺼이 연습 대상이 되어주기도 하는데요. 제가 노력하는 걸 알기 때문에 ‘자네라면 실수해도 괜찮다’라고 말해주지요. 그만큼 믿음이 돈독합니다.

손님들에게 받은 사랑을 지역사회 봉사로 돌려주신다고요.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했지만 이제는 미용으로 밥도 먹고 생활도 잘하고 있잖아요. 그 기술을 좀 더 넓게 나누고 싶어 미용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요양병원, 양로원도 방문하고, 동사무소에서 저소득층 어르신의 머리를 다듬는 일도 하죠. 제 기술이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게 참 뿌듯합니다.

원장님처럼 오래도록 가게를 이어가고 싶은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전해주고 싶나요?

너무 미용에만 몰두하다 보니 몸을 보살필 겨를이 없었어요. 충장로에서 신부 화장까지 할 때는 새벽 3~4시에 문을 열어 밤 10시까지 운영했으니까요. 결국 위궤양과 봉와직염이 찾아오더라고요. 두 달 동안 쉬면서 미용 일을 그만 둬야할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남편과 가족들이 큰 힘이 되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죠. 일이 바쁘면 몸이 힘든 줄도 모르게 되는데 결국은 탈이 납니다. 오래 하고 싶다면 몸을 아끼고, 건강을 잘 챙기라고 꼭 말하고 싶어요.

백년가게로 선정되었는데요. 소감과 함께 앞으로의 각오를 부탁드립니다.

저를 믿고 찾아와준 손님들 덕분에 백년가게라는 타이틀도 얻게 되었습니다. 한분 한분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고요. 한결같이 뒷바라지한 남편과 가족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앞으로 미용산업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미용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기꺼이 기술을 전수하고 싶습니다. 문은 언제든 열려 있습니다. 나아가 봉사활동도 계속해 지역사회와 함께 커가는 가게로 남고 싶습니다.

광주 기맹례헤어숍

· 주소 : 광주 남구 백운로 5
· 전화 : 062-675-7689
· 영업시간 : 09:00~18:00(일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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