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1

은제 다기의 우아한 기품

광주 에덴공방 신경식 명장
에덴공방

은은한 빛을 발하는 담백한 은제 다관이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도자기로 빚은 찻주전자가 익숙한 이들에게는 제법 신선하다. 광주 충장로에 위치한 에덴공방에는 신경식 광주광역시 금속공예 명장이 만든 은으로 만든 찻주전자와 차 거름망, 찻숟가락이 익숙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명장이 재현한 은제 유물

“고려시대 유물 중 은으로 찻숟가락, 일명 ‘차시’가 있더라고요. 아마도 궁중에서 사용한 것이겠지요. 옛 유물을 재현하던 중 요즘 시대에 맞는 제품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유물의 가치를 이으면서 생활공예품의 실용성까지 갖춘 찻주전자와 차 거름망을 만들기 시작한 계기입니다.”

은제 다기는 어느덧 신경식 명장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굳어졌다. 차가 가진 고요하면서도 깊은 성정이 은제 다기의 고상한 기품과 제대로 어우러진다. 은의 항균 기능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말이다. 신경식 명장은 후대에 본이 될 수 있는 작품을 남기는 게 명장으로서의 사명이라며 오늘도 묵묵하게 작품을 만들어 간다.

은제 찻주전자의 품격

금속공예 명장으로 자리할 만큼 35년 넘게 한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금속공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1976년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어요. 기술 하나를 익히면 먹고살 수는 있는 시대였잖아요. 금은세공 기능사에 도전해 처음에는 일반적인 귀금속을 다뤘습니다. 그러다 뒤늦게 대학에 다니면서 시야가 넓어졌어요. 제가 익힌 기능에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접목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중 하나가 문헌 속에 존재하는 유물을 하나씩 재현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이게 재미있더라고요.

현재 에덴공방에서 선보이는 작품과 이어지는데요. 특히 은으로 만든 다기로 독보적인 입지를 다지셨습니다.
사라져가는 걸 재현하는 자체도 매력이 있지만 옛 유물로만 머무르지 않도록 현대화시키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녀, 노리개 등 규방 장신구 등을 만들다 은제 차 도구까지 발전했지요. 박물관에 고려시대 유물 중 하나로 찻숟가락이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화려한 금과는 달리 차분하고 담백한 느낌을 지닌 은의 매력이 돋보였습니다. 그런데 은으로 만든 다른 차 도구는 찾아볼 수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은제 다기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시행착오 끝에 은제 차시를 재현하고, 이후 은제 다관, 거름망, 숙우 등을 제작해 상품화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은제 차 도구 제작자로 이름을 알리며 단숨에 주목받았습니다. 은제 다관은 기능적으로도 우수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항균·정화 작용을 하기에 은주전자에 물을 담아두면 정화가 됩니다. 그 물로 차를 우리니 녹차의 떫은맛을 잡아주는 효과가 있고요. 차를 좋아하고 즐기는 분들은 그 차이를 바로 알아채시더라고요. 특히 차를 사랑하는 중국에서 관심이 이어졌습니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진출해 한창 인기를 얻었습니다. 사드 갈등과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판로가 줄었지만, 차차 회복될 것을 믿고 묵묵히 작품을 만드는 중입니다.

은을 재료로 한 공예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은은 귀금속이면서 값이 싸고 다루기 쉽다는 장점이 있어요. 깨지지 않는 강한 내구성을 자랑하는 동시에 귀금속의 가치를 품고 있기에 후대에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이 될 수 있죠. 찻주전자의 경우 기본적으로 쓰기 편하고, 가볍고, 많은 양의 물이 들어간다는 기능적인 면도 뛰어납니다.

다루기 쉬운 특징 때문에 디자인을 쉽게 베끼기도 한다고요. 이에 어떻게 대응하시나요?
실제로 제가 은제 다관과 차 거름망을 시장에 출시하자 금세 전국에 퍼졌습니다. 서울의 큰 공방에서 대규모로 제작해 유통시킨 것이죠. 오히려 제 작품은 묻히는 상황이 처음에는 안타깝기만 했어요. 그러다 관점을 달리해 남들이 쉽게 베낄 수 없는 정교함을 더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손잡이에 매화, 연꽃 등의 칠보 장식을 넣고, 망에 구멍뿐 아니라 꽃무늬를 새기고, 구멍 패턴도 다양화했습니다. 물론 늘 기능적인 것을 우선 생각하고 거기에 맞는 디자인 소재를 찾습니다. 연잎에 개구리, 연못에 잉어 등 자연 풍경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죠. 해마다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에 옻칠을 더한 찻주전자도 인상적입니다.
동 주전자 겉면에 옻칠을 더해 구워주면 동이 변색해 지저분해지는 걸 막고 멋스러움도 더할 수 있습니다. 주전자 내부는 옻칠 없이 동 그대로 둡니다. 동이 카페인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제품의 다변화는 늘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차 도구뿐 아니라 술잔이나 향 스틱 등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금속공예 명장으로서 활동과 사명도 궁금합니다.
광주광역시 명장답게 광주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답하는 마음을 담아 고향사랑기부제의 일환으로 광주의 상징인 무등산 서석재에 까치가 날아가는 모습을 담은 은 팬던트를 절반 값으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칠보 그립톡도 만들었고요. 시청 답례품으로 무등산 주상절리대와 철쭉을 담은 귀이개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의 꿈과 계획이 궁금합니다.
제가 그 옛날 유물을 보고 영감을 얻어 제품을 만들었듯, 지금 만든 제 작품이 다음 세대까지 잘 이어지도록 기반을 잘 다지는 게 소망입니다. 쓰기도 좋고 보기도 좋은 은제 생활공예품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습니다.

광주 에덴공방

· 주소 | 광주 동구 충장로5가 74-3
· 전화 | 062-234-7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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