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식당의 100년은 고객이 만들었어요.”
1924년 문을 연 해남 천일식당은 올해 딱 100년을 맞았다. 일제강점기와 전쟁, 급격한 산업화까지 질곡의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대한민국에서 100년을 이어온 식당은 귀할 수밖에 없다. 정갈한 남도한식의 맛과 멋을 한 자리에서 지켜온 천일식당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값진 유산이다. 시할머니인 고 박성순 창업주, 시어머니인 고 이정례 여사에 이어 3대째 천일식당을 운영하는 오현화 대표는 그 공을 기꺼이 고객에게 돌린다.
1924년부터 100년을 맞은 해남 천일식당
“IMF가 터져도, 코로나가 터져도 손님들이 꾸준히 와주셔서 버틸 수 있었어요. 아무리 훌륭한 유산을 남겨도 3대까지 가기는 쉽지 않다고 하잖아요. 천일식당의 며느리로서 100년을 맞이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죠. 옛 천일관 시절부터 찾아준 손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천일식당은 가난한 양반집에 시집와 가장 역할을 해야 했던 박성순 창업주의 억척스러운 생활력에서 출발한다. 처음에는 시장 좌판에서 나물, 젓갈, 국 등을 팔았는데 입맛 까다로운 관청의 높은 사람들에게까지 금세 소문이 났다. 본격적으로 식당을 차려보라는 주변의 권유에 1924년, 백반을 기본으로 한 천일관을 열었다. 그 명맥이 며느리에서 며느리로 이어져 2023년에도 변함없이 천일식당을 만날 수 있다. 100년을 꽉 채운 식당의 가치의 가치는 무엇이 다를까,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고 이어가는 가치는 무엇일까? 오현화 대표는 그 답을 ‘사람’에게서 찾고 있었다.
백년가게 비결은 사람에 있어요
천일식당의 100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중소벤처기업부 인증 ‘백년가게’ 중에서도 실제 100년을 채운 가게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데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100년 동안 발걸음을 이어주신 고객님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또 식당을 잘 일군 두 어르신의 복이 저에게까지 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단품 메뉴가 아닌 한식으로 100년을 버티기란 쉽지 않습니다. 반찬 하나하나에 쓰이는 재료 수급부터, 손질, 조리까지 티는 안 나는데 보통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거든요. 기본적으로 사람을 많이 써야 유지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운영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요.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잘 가나던 한식당이 커피집으로 바뀌는 사례도 많이 봤습니다. 오랜 식당이 사라지면서 한식 문화 또한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천일식당이 더욱 사명감을 가지고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간장, 된장까지 직접 담으면서 100년을 이어온 식당이잖아요. 마지막으로 30~40년 동안 변치 않고 함께 일해주신 천일식당 식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10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킨 것도 놀랍습니다. 건물을 화려하게 키우지 않고 나지막한 단층 한옥을 유지하며 이어오고 있어 백년식당의 운치가 더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시할머니께서 운영하실 때만 해도 식당을 쉽게 찾아볼 수 없던 시절이라 문턱이 높았습니다. 고관대작이나 찾는 곳이었죠. 문턱이 차츰차츰 낮아져 이제는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고객들이 찾는데요. 예전에 천일식당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만 맡을 뿐 가난해서 들어가지는 못했는데 이제는 여유가 생겨 가족들과 찾아왔다고 하는 손님을 보면 제가 다 뿌듯합니다. 이곳에서 상견례를 하고, 약혼을 한 분들도 많지요. 대를 이어 3대가 찾는 가족 손님도 많고요. 오래된 건물이라 천장이 낮은 게 특징인데 ‘머리조심’이라고 써 두어도 머리를 찧는 손님이 많습니다. 제가 맡은 후 황토벽과 슬레이트 등을 보수한 게 지금의 모습입니다. 큰돈을 주고 고쳤는데 꾸미는 데 쓴 게 아니라 별로 티는 안 나더라고요.(웃음)
오랜 전통의 식당인 만큼 누가 대를 잇는가도 큰 관심사였을 텐데요. 대표님은 어떻게 천일식당을 잇게 되었나요?
6남 1녀, 교육자 집안의 고명딸로 자란 제가 식당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광주에서 지내다 피서철이나 명절에 한 번씩 장부 정리를 도와드리는 정도였죠. 그런데 시어머님이 1988년도에 쓰러지신 거예요. 올림픽으로 손님들이 밀려오던 때라 3살도 안 된 딸을 데리고 해남으로 내려가 어머니 병간호를 하면서 동시에 장사도 하게 됐죠. 잠시 회복한 시어머니가 다시 쓰러지시면서 본격적으로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부담감도 적지 않았을 텐데요. 어느덧 35년 가까이 천일식당을 흔들림 없이 운영하고 계십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끌었나요?
다행히 제가 사람을 좋아해요. 손님들이 내 집에 오는 게 반갑고,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더라고요. 얼마나 많은 식당이 있는데 그 중 우리집에 온 것만으로도 진심으로 고마웠어요. 그래서 손님들이 계신 방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음식은 입에 맞으세요?’ ‘이거 한 번 맛보세요’ ‘이 나물은 어디에서 왔어요’ 등 자연스럽게 설명을 더합니다. 주인이 직접 신경을 쓰냐, 안 쓰냐의 차이가 분명히 있거든요. 또 혼자 오신 손님도 기꺼이 반깁니다. 오히려 혼자서 한정식을 찾을 정도라면 얼마나 높은 수준의 입맛을 가지고 계시겠어요. 어떤 손님도 차별 없이 모십니다. 직원들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서로 언니, 형수가 되어 지금도 가족처럼 지내고 있어요. 지쳐서 그만둘 때까지 함께해요. 82세까지 일하다 정년을 맞은 분이 계시니까요. 그렇게 사람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니 힘든 상황도 뛰어넘게 되더라고요.
100년 동안 이어온 천일식당의 맛도 궁금합니다.
솔직히 화려한 요리사는 없어요. 단, 항상 변치 않는 손맛으로 된장, 고추장 등 장을 직접 담급니다. 대부분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추기 때문에 담백하고 깔끔하며, 어머니가 해주신 밥상이 생각난다고 해요. 물론 젓갈, 김치 등도 직접 담고, 좋은 제철 재료를 수소문해서 상에 내는 건 당연하고요. 사실 재료가 좋으면 양념을 많이 할 필요가 없거든요. 대표 메뉴인 떡갈비는 일일이 손으로 고기를 다진 다음 숯불로 구워냅니다. 알타리김치, 파김치, 갓김치, 생김치 등 김치만으로도 밥 한 공기가 금방이고요. 조선간장에 참기름만 떨어뜨린 감태자반, 겨자분에 참기름, 마늘을 더한 양념이 감칠맛을 살리는 해파리무침도 별미입니다.
대를 이어 식당을 운영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천일식당처럼 실제 100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앞서 말했든 사람을 좋아해야 해요. 사실 음식의 맛이나 요리 실력 차이는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요소가 사람을 향한 따스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손님을 우선으로 배려하고, 따뜻하게 맞이하는 게 기본이죠. 식당에 발을 디딘 순간 기분이 좋아지도록 따스한 말 한마디와 고맙다는 표현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또 저는 식당 운영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일기를 단 하루도 빼놓지 않았어요. 그날의 손님은 어땠는지, 아주머니들은 어땠는지, 내 마음은 어땠는지 등을 기록하면서 반성도 하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제 역사에요. 하루하루 짧게라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00년을 맞은 천일식당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됩니다.
각오와 목표는 단순해요. 고객을 가족처럼 모시며, 집에서 담근 조선장으로 담백한 맛을 내는 건강한 한정식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죠. 그게 제 사명입니다.
· 주소 | 전남 해남군 해남읍 읍내길 20-8
· 전화 | 061-535-1001
· 영업시간 | 10:00~21:00(매달 2, 4번째 월요일 정기 휴무, 8월에는 4번째 월요일만 휴무)
· 주요메뉴 | 떡갈비 정식, 불고기 정식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