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와 낙지의 조합, 이름만으로도 든든한 갈낙탕의 원조가 궁금하다면 전남 영암군 학산면에 자리한 독천식당을 찾으면 된다. 1970년부터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독천식당은 낙지를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이들이 손꼽아 인정하는 전국구 맛집이다. 연포탕과 낙지구이, 낙지무침도 별미이지만 독천식당의 명물은 역시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을 자랑하는 갈낙탕이다.
53년 독천식당, 갈낙탕 탄생기
2갈낙탕의 탄생은 독천식당의 지리적 입지에서부터 출발한다. 차로 5분이면 닿는 미암면 문수포는 예부터 갯벌이 좋아 낙지, 짱뚱어, 새우 등이 풍성했다. 또 식당이 자리한 독천면은 송아지 ‘독(犢)’자를 쓸 정도로 우시장이 발달해 있었다. 영암을 대표하는 특산물인 낙지에 질 좋은 소고기까지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이 둘의 만남은 운명적이라고 해야 할까.
“당시 세발낙지는 특별한 요리랄 게 없었어요. 손으로 한 번 훑어낸 뒤 그대로 먹는 게 가장 맛있거든요.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살짝 데치는 정도였죠. 주변에 우시장이 있으니 갈비도 함께 팔았던 것이고요. 그렇게 80년대 초까지 낙지와 갈비 메뉴가 각각 있었는데요. 어느 날 탕 요리를 제대로 만들어보자고 연구하다 낙지와 갈비를 함께 끓인 갈낙탕을 개발한 거죠. 저희가 대한민국 갈낙탕의 원조입니다.”
22대째 독천식당을 이어가고 있는 김건수 대표의 갈낙탕에 담긴 사연이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맛깔나게 이어진다. 53년을 이어온 식당이니 그 안에 담긴 사연도 얼마나 맛있게 익었겠는가. 젓갈과 반찬이 풍성하게 곁들어진 갈낙탕 한 그릇도 독천식당이 거쳐온 세월만큼이나 깊은 맛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국내산 생물 낙지가 아니면 취급하지 않는 고집 덕분에 맛을 아는 이들은 주저 없이 영암 독천식당으로 발길을 잇는다.
국산 생물 낙지, 확실히 다르죠
갈낙탕의 원조 식당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1970년에 시작해 이제는 영암을 넘어 전국에서 손에 꼽히는 식당으로 성장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고 서망월 님)께서 짜장면집으로 시작했어요. 아버지(김충웅 님)는 그 옆에서 나전칠기를 만드셨고요. 그런데 짜장면을 몇 년 팔아도 그리 남는 게 없자 고급화를 꾀한 게 낙지를 중심으로 한 지금의 독천식당입니다. 집이 버스정류장 근처 자리라 4일, 9일 장날이면 빨간 대야에 담긴 낙지가 손수레로 바쁘게 오고 가던 풍경을 늘 봐왔어요. 그만큼 낙지가 풍성했습니다. 그러다 80년대 초, 우시장의 갈비와 접목한 갈낙탕을 선보였는데요. 한창 도로공사를 하던 건설 업자들이 ‘촌구석에 뭐가 있다냐?’하고 찾아다니다 저희 갈낙탕을 맛보고는 반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죠.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2000년도 이후에요. 전라남도에서 각 시군마다 원조집, 이름이 있는 맛집을 찾아 나섰는데요. 식품영양학과 교수들이 암행으로 조사했다고 하더라고요. 결론적으로 ‘영암 독천식당이 갈낙탕의 원조다’라며 남도음식명가로 지정해 외지까지 소문이 나게 됐습니다.
대표님은 어떻게 독천식당을 잇게 되었나요?
광주에서 건설업으로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는데요. IMF가 터지는 바람에 일이 뚝 끊겼습니다. 사정을 안 부모님이 식당을 도와달라고 손을 내미셨죠. 2000년에 아내(김지연 대표)와 함께 합류했습니다. 2016년까지는 둘 다 월급쟁이로 일을 했고요. 이후 ‘너희들이 제대로 해보라’라며 아내에게 사업자를 넘기셨습니다. 부모님이 뚝심으로 일군 식당을 제대로 이어가려고 합니다.
낙지를 잘 아는 사람,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독천식당의 명성이 자자합니다. 무엇이 다른가요?
식당 문을 연 이래 국내산 생물 낙지만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국내산 세발낙지가 많이 잡혔지만 지금은 많이 귀합니다. 그만큼 가격도 비싸고 양식이 안 되니 가격 변동 폭도 4~5배를 오갈 정도로 커요. 특히 금어기(6월 20일~7월 20일)의 영향을 받는 7, 8월에는 낙지 수급이 극히 제한적이라 잠시 영업을 접는다고 보시면 돼요. ‘국내산 낙지 품귀 현상으로 영업을 못 합니다’라고 양해를 구합니다. 이 두 달 동안은 수급 상황에 따라 간헐적으로 운영하죠.
여름에 문을 여는 낙지집도 많습니다. 봄가을, 낙지가 쌀 때 잔뜩 사서 냉동해두었다 팔거나 수입산을 쓰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지요. 하지만 맛 차이가 확연히 납니다. 모를 수가 없어요. 생물은 끓이면 보기 좋게 축 늘어집니다. 하지만 해동한 낙지는 국물이 빨갛게 우러나고 다리가 주꾸미처럼 꼬여요. 국산 생물 낙지만 취급하기에 믿고 오는 손님들이 있는데 돈 좀 더 벌려고 원칙이 무너지면 되겠어요? 덜 남을지라도 더 오래가는 가게가 맞는 거죠.
타협하지 않는 좋은 재료가 맛의 비법이자 백년가게의 비결이네요.
맞습니다. 부모님께서도 늘 ‘좋을 걸 써라’라고 하셨거든요. 갈비도 마찬가지예요. 가격 경쟁력이 있는 LA갈비로 탕을 끓이는 경우가 많은데 퍽퍽하고 냄새가 나기 쉽습니다. 이를 덮기 위해 이것저것 많이 넣게 되고요. 저희는 국내산 육우를 사용하는데요. 3~4시간 정도 끓여내면 기름기도 적당히 있으면서 살도 부드럽습니다. 낙지든, 갈비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특별한 조리 비법은 없습니다.
남도밥상의 풍성한 반찬도 빼놓을 수 없죠.
14가지 정도의 반찬이 차려져요. 젓갈이 별미인데, 토하젓, 세하젓, 창난젓, 황석어젓에 생새우무침이 나갑니다. 젓갈의 경우 가장 맛있을 때 사서 소금 간을 해 1년 정도 숙성시키고 있습니다. 열무김치, 파김치, 갓김치, 미역무침, 감태무침 등도 인기가 있고요. 어머니께서 어딜 가나 맛있는 반찬을 눈여겨보시고는 접목하곤 했죠. 저도 예전 맛을 안 잊으려고 합니다. 좋았던 추억으로 오시는 단골들이 많은 만큼 변치 않는 식당이 되고 싶습니다.
백년가게 인증도 의미가 클 것 같습니다. 전통과 원칙을 이어가면서도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는 숙제도 품고 있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부모님이 잘 일군 식당이니 그 가치를 제대로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닷속 일은 제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국산 생물 낙지를 재료로 한 식당이 얼마나 더 오래갈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독천식당을 운영하는 동안에는 국산 생물 낙지를 믿고 먹을 수 있는 식당이라는 자부심을 이어가야죠. 또한 시대의 변화에 맞춰 밀키트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낙지 수급에 따라 유연하게 판매할 수 있는 강점이 있으니까요. 물론 변치 않는 맛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더 많은 분이 독천식당의 갈낙탕을 즐길 수 있도록 힘써보겠습니다.
· 주소 | 전남 영암군 학산면 독천로 162-1
· 전화 | 061-472-4222
· 영업시간 | 11:00~19:30(브레이크타임 16:00~17:00, 토/일요일은 브레이크타임 없음)
· 주요메뉴 | 갈낙탕, 연포탕, 낙지구이, 낙지데침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