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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세종실록으로 읽는 왕실의학(34) 세종대왕의 흰 머리와 조기 백발 치료법

“내 나이가 33세인데 귀밑의 터럭 두 오리가 갑자기 세었으므로, 곁에 모시는 아이들이 놀라고 괴이히 여겨 뽑고자 하기에, 내가 말리며 말하기를, '병이 많은 탓이니 뽑지 말라'고 하였다. 나의 쇠함과 병이 전에 비교해 날마다 더욱 심해지니 경은 그런 줄을 알라” 하였다.

- 세종실록 세종 13년(1431) 8월 18일 -

세종은 수렴형 인간형에 가까웠다. 준비하고, 기다리고, 인내하는 유형이다. 신체활동보다는 정신활동이 더 왕성했으며 술을 즐기지 않았고, 책을 읽으며 궁리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이와 같은 스타일은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그는 왕자 시절부터 정국의 변화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유아 시절 1차 왕자의 난(1398년)에 따른 정도전을 비롯한 여러 대신의 죽음, 그리고 소년 시절 2차 왕자의 난(1400년)으로 인해 한동네에 살던 큰아버지 회안대군(懷安大君)과 사촌 형의 유배, 형 양녕대군의 폐세자(1418년)를 겪었다. 즉위 무렵에는 장인인 심온(沈溫)이 역적으로 몰리며 처가가 몰락하는 등 연속된 큰 사건을 충격 속에서 지켜봐야 했다. 이러한 일련의 정신적 충격들과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보태져 조기 백발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세종은 서른셋에 흰 머리가 솟는 것을 느꼈다. 보통 노화의 과정인 흰 머리는 40세 무렵부터 난다. 동의보감에는 "여자는 42세, 남자 48세가 되면 얼굴이 마르고 머리가 희어지기 시작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니 세종은 평균치보다 몇 년 앞서 흰 머리가 난 것이다. 흰 머리는 귀밑에서 시작해 옆머리, 정수리, 뒷머리로 진행되는데 30대 초반에 흰 머리가 솟기 시작한 세종은 여느 사람보다 일찍 백발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기 백발의 주된 원인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노화에 의한 백발을 촉진한다. 또 호르몬 이상, 갑상선 질환 등도 백발의 원인이 된다. 특정 질환에 의한 백발은 병이 나으면 다시 흑발로 변하나 노화에 의한 백발은 거의 흑발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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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예외인 경우도 있다. 영조의 경우 영조실록 42년(1766년) 3월 6일 "나는 검은 머리가 다시 나서 이제 두어 치()가량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음을 볼 때 흰 머리가 검은 머리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영조 50년(1774년) 11월 25일엔 빠진 이가 새로 났다는 기록도 있다. 이처럼 신비한 경험을 한 영조는 그 비결을 꾸준히 복용해 온 약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중 하나는 건공탕(建功湯)으로, 원래는 이중탕(理中湯)이었으나 일찍이 그 약이 자신의 병을 낫게 하자 건공탕이라 이름까지 하사하기도 하였다(영조실록 영조 34년(1758년) 12월 21일).

사실, 검은 머리가 흰 머리로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태아일 때의 모발은 흰색인데 성장하면서 색이 든다. 모낭 속에 티로시나제(tyrosinase), TRP1, TRP2 효소가 유멜라닌(eumelanin)과 페오멜라닌(pheomelanin)을 만드는데 유멜라닌이 많으면 흑발이 되고, 페오멜라닌 비율이 높으면 금발이 된다. 하지만 색소는 무한정 생산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멜라닌 세포 수가 줄어들게 되고 이에 따라 머리카락은 원래의 흰색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특히, TRP2가 멜라닌 감소에 영향을 많이 받고, 노화로 인해 간, 적혈구, 신장 등에서 카탈라아제 효소 분비가 낮아지면 모발에 쌓이는 과산화수소를 중화시키지 못해 흑발이 백발로 바뀌기도 한다.

이른 나이에 백발이 되는 현상을 치료하는 즉효 방법은 없다. 다만 신()과 심()의 기능을 강화하면 스트레스가 조절되고 기혈이 충분해져서 모발 건강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충분한 영양 섭취와 멜라닌 합성에 유리한 야외활동을 많이 하는 게 좋다. 참고로 신()기능 저하는 흰 머리카락을 나게 할 뿐만 아니라 청력 약화, 뼈와 관절 기능 약화, 성 기능 약화 등을 부를 수 있다.

머리카락을 검게 하는 한의학 처방은 기혈과 혈액순환 촉진, 스트레스 해소 원리다. 사물감리환(四物坎離丸), 연령고본단(延齡固本丹), 경옥고(瓊玉膏) 등이 도움이 된다. 의림촬요(醫林撮要)에 신장(腎臟)이 허하고 차가운 증상을 치료한다고 기록된 연령고본단은 허약, 만성피로, 성 기능 저하에 도움이 된다. 동의보감에 '정을 채우고 수()를 보하며 진기(眞氣)를 고르게 하고 성()을 기르고, 노인을 아이로 돌아오게 하고 모든 허손을 보하고 온갖 병을 없앤다'고 기록된 경옥고는 명종, 영조, 정조 임금도 복용한 기록이 있으며 면역증강과 피로회복 그리고 노화 억제 효과가 있다.

온갖 비방 들어가며 늘어나는 흰 머리카락 (百謗叢中白髮生)
옛날 장원급제했던 영광 아예 말도 하지 마소 (當年休道狀元榮)
글로 세상을 제압한들 쓸모가 하나 없는 것을 (文雖伏世還無用)
배운 게 남만 못하거니 감히 이름을 바랄까. (學不如人敢近名)
꾀도 없이 멍청하니 웃음거리만 될 뿐이나 (黠小癡多供俗具)
나라 위한 뜻만큼은 선우후락(先憂後樂)이라 (憂先樂後事君情)
빈궁과 영달이야 조물(造物)의 손에 달렸으니 (窮通會有天工在)
평생 내가 지킬 일은 정성 성(誠)자 하나 사랑하는 것 (自愛平生一字誠)

- 최립(崔岦:1539~1612), 간이집(簡易集) 운()을 빌려 가슴 속에 생각을 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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