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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세종실록으로 읽는 왕실의학(33) 세종대왕 사신 접대와 풍한감기(風寒感氣)

“사신의 행차에 열병(熱病)이 그치지 않는다.
서로 접촉하면 전염될까 봐 깊이 염려된다. 점쟁이가 일찍이 액()을 이야기했다. 나는 이 말을 믿지 아니한다. 그러나 열병은 서로 접촉하면 안 된다.”

- 세종실록 세종 13년(1431) 8월 12일 -

조선은 중국 명나라와의 외교 관계에 심혈을 기울였다. 조선의 기본적인 외교정책은 '사대교린(事大交隣)'으로, '사대'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이고, '교린'은 이웃 나라와 사귄다는 의미이다. 조선은 중국과의 관계는 사대로, 그 이외의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는 교린의 관계를 맺었다. 따라서 조선의 안정에 있어서 중국 명나라와의 우호는 필수적이었다. 사실 조선이 건국된 직후에는 요동정벌론이 거론되는 등 명나라와의 긴장 관계가 유지되었으나 태종이 즉위하며 명나라와의 관계가 다시 원만하게 바뀌어 전쟁을 피하고 내치에 전념할 수 있었다.

세종이 즉위한 때 조선은 건국한 지 고작 26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국이었다. 따라서 그 조선의 틀을 마련해야 했던 세종에게 국제정세 안정은 최고의 과제였다. 그러므로 세종은 명나라 사신 영접에 많은 공을 기울였다. 보통 명나라 사신단의 규모는 황제의 명을 전하는 칙사(勅使)와 실무자, 수행원 등 약 200명에 달했다. 명나라에서는 통상 1년에 2차례 정도 사신을 보내왔는데 임금의 즉위나 훙서(薨逝) 등이 있으면 특별히 사신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명나라 사신이 압록강을 넘을 때 조선은 2품 관리를 원접사(遠接使)로 임명해 의주에서부터 도성까지 안내했다. 사신이 한양에 도착하면 임금은 종친, 관료들과 함께 돈의문 밖 영은문(迎恩門)으로 나아가 사신을 맞았다.

그런데 세종 13년 8월, 서북지역에 전염병이 돌았다. 그러니 이 지역을 거쳐 온 사신 일행도 감염 우려가 있었다. 사신단이 평안도를 거쳐 황해도에 이르자 세종은 사신 맞이 여부를 신하들과 의논한다. 이미 대신들은 왕의 사신 영접에 대해 반대 의견을 올린 상태였다. 하지만 국가 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기에 세종은 다시 한번 중신들과 논의를 한 것이다.

지신사 안숭선(安崇善)이 아뢰기를,
"전하의 일신은 종사의 안위(安危)가 달렸사온데 만일 전염되면 후회한들 무엇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13일 문소전(文昭殿) 별제(別祭) 뒤에 풍한감기(風寒感氣)에 걸렸다 하고 회피함이 어떨까."
하매, 숭선이 아뢰기를,
"오늘부터 병이 있다고 하시면 사신이 반드시 대제에도 오히려 친히 행하지 못하셨으니 반드시 거짓말이 아니라고 할 것이옵니다."
하매, 임금이 그렇다고 말하고, 드디어 문소전과 헌릉의 별제를 정지하였다.

- 세종실록 세종 13년(1419) 8월 12일 -

참고 이미지

결국, 세종은 사신 영접을 하지 않았다. 임금이 문소전 별제 후 풍한감기(風寒感氣)에 걸렸음을 이유로 들었다. 문소전은 태조 이성계와 그의 첫째 비 신의왕후(神懿王后) 한 씨를 모신 사당으로 세종 15년에는 문소전을 새로 세우며 태종의 위패도 함께 모셨다. 세종 13년 8월 13일에 거행한 제사는 추석을 맞아 행하려던 별제였다. 세종은 사신을 맞는 신하들에게 '문소전과 헌릉에 별제를 행하고자 하여 탕에서 목욕할 즈음에 상풍(傷風)으로 부종(浮腫)이 나고, 조금 신열이 나므로, 만약 18, 19일에 서울에 들어오던 칙명을 맞이할 수 없을 것이니, 하루 이틀 더 연기하여 거행하도록 하라'고 전하게 하기도 한다.

감기는 풍한형(風寒型), 풍열형(風熱型), 협습형(挾濕型), 협서형(挾暑型), 시행감모(時行感冒), 노인 및 장병환형(長病患型)으로 구분한다. 풍한형 감기는 한랭한 겨울에 잘 걸린다. 오한과 미열, 재채기, 맑은 콧물이 주 증상이다. 심하면 목이 간질거리거나 아프고, 기침, 두통도 있다. 행소탕(杏蘇湯), 소풍산(消風散) 등에 계지탕이나 쌍화탕을 가미하여 치료한다. 풍열형 감기는 감기 증세를 동반한 열성 질환이다. 날씨가 따뜻한 봄에 많이 발생한다. 증세는 오한, 미열, 구강건조, 목 통증, 기침, 탁한 콧물, 가래, 근육통, 황색 소변 등이다. 처방은 연교패독산(連交敗毒散)류, 마황탕, 갈근탕, 삼소음 등으로 한다. 협습형 감기는 습한 기운에 노출된 장마철에 잘 걸린다. 특히 만성 위장염을 앓는 사람에게 발생 빈도가 높다. 고열, 식은땀, 두통, 근육통, 복통, 구토, 설사 증세가 있다.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이나 강활승습탕(羌活勝濕湯) 등을 쓴다. 협서형 감기는 더위와 관련 있어 주로 여름에 발병한다. 증상으로는 고열, 입 마름, 가슴 답답, 구토, 빈뇨, 설사가 있는데 가미향유음(加味香薷飮) 등을 쓴다. 시행 감기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유행성 질환과 유사하다. 심한 고열, 두통, 안구통, 충혈, 약한 기침이 특징이다. 땀으로 열을 내리고 해독에 도움 되는 패독산(敗毒散), 은교산(銀翹散)과 시갈해기탕(柴葛解肌湯)에 보제소독음(普濟消毒飮)을 더해서 쓴다. 노인 및 구병환 감기는 저항력이 약한 노인과 병약자에게 발병한다. 기허, 혈허, 음허, 양허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는 데 삼소음(參蘇陰), 총백칠미음(蔥白七味陰), 가미위유탕(加味萎蕤湯), 팔미환(八味丸) 등이 처방된다.

감기 치료에 대증 요법으로 흔히 사용되는 약은 항생제, 해열제, 항히스타민제(콧물약), 항울혈제(코막힘약), 점액용해제(거담제)와 진해제(기침약)다. 이들은 급성기의 심한 증상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이염, 축농증, 폐렴 등의 2차 감염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감기는 본래의 면역력 회복에 중점을 두어 가급적 생약으로 약치나 식치를 하고 충분한 휴식과 영양을 보충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난날 우연히 감기가 들어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었고 오래갈수록 더욱 고통스러웠는데, 오직 우리 어머니께서 문득 재계하시고 노천에서 기도하시면서 아무개를 대신하게 해 주기를 청하셨으니, 오직 종묘사직의 중요함만 생각하고 옥체(玉體)의 존귀함은 아예 잊으셨습니다.
아, 누구인들 어머니가 없겠으며 어느 어머니인들 모정이 없겠습니까만, 지극한 모자의 정과 사랑이 그 누가 우리 모자 사이만 한 이가 있겠습니까. 소자(숙종)가 지난겨울에 앓았던 병은 어머니께서 오래전부터 미리 염려하시던 것입니다. 부스럼이 많이 돋아나고 증세가 때 없이 변하여 밤낮으로 놀라고 걱정하신 것이 다른 날보다 갑절이나 더하여 하늘에 사무친 정성은 신명(神明)의 가호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편찮으신 징후가 도리어 순월(旬月) 사이에 위독해지셨습니다. 병상에 있던 나머지 마침내 밤낮으로 곁에서 간호하는 일을 다하지 못하게 된 것은, 실로 소자의 가없는 슬픔입니다. 아, 슬픕니다.

국조보감(國朝寶鑑) 숙종-대비(명성 왕대비)에게 올리는 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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