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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세종실록으로 읽는 왕실의학(40) 세종의 당뇨병 식치(食治)요법

소갈증(消渴症)이 있어 열서너 해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역시 조금 나았다.

- 세종실록 세종 21년(1439) 6월 21일 -

40대에 접어들면서 세종대왕의 건강은 이전보다는 다소 회복되는 듯하다. 10년 이상 고생한 다리 통증이 완화되고, 마음대로 눕지 못할 정도로 심한 등의 부종(浮腫) 또한 온천 목욕 후 약간 좋아졌다. 다만, 안질환이 몹시 심했다. 왼쪽 눈에 이어 오른쪽 눈도 흐릿해 한 걸음 사이의 사람도 구분하는 게 쉽지 않았다. 세종 21년(1439) 6월 21일 세자에게 강무를 대신하게 하며 그 배경을 직접 설명하고 있는데, 바로 그 글에서 그러한 정황들이 확인된다. 그리고 그 기록에서 임금은 지병인 소갈증이 조금 호전되었다고 말했다.

소갈증은 당뇨이다. 갈증이 심해 물을 많이 마시게 되고, 소변을 자주 보며, 입과 혀가 건조하고, 얼굴이 붉어지며 허기지고, 체중이 주는 증세이다. 특히 비만인에게 잘 발생하는 데 영양과잉, 과도한 스트레스, 운동 부족 등으로 내분비호르몬인 인슐린과 당대사(糖代謝)와의 상관관계가 원인이 된다.

동의보감에서는 소갈증의 원인을 두고 "살찐 사람이 달고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에 그 기가 위로 넘쳐 소갈이 되는 것"이라고 하며 "기름진 것을 먹으면 주리(腠理)가 촘촘해져서 양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된다. 즉 기름진 음식은 내열이 생기게 하는데 단것은 성질과 기운이 부드러워 발산이 잘되지 않아서 중만(中滿)이 생기게 한다. 내열이 있으면 양기가 타오르고, 양기가 타오르면 물을 마시려 하고 목구멍이 마른다. 중만이 있으면 양기가 남아돌고, 양기가 남아돌면 비기(脾氣)가 위로 넘치기 때문에 소갈이 되는 것이다"라고 그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참고 이미지

이 소갈증이 있는데 영양이 과잉되면 뇌저(腦疽)1) 목덜미의 가운데 부분을 지나는 독맥경(督脈經)에 생기는 악성 종기나 등창이 생기고, 영양이 부족하면 배가 부르는 창만(脹滿)이 생긴다. 창만은 찬 약재 사용으로 위의 기능이 떨어진 것도 요인이 된다.

합병증으로 진물이 나면서도 잘 터지지 않는 옹저(癰疽)가 자주 생긴다. 옹저는 종기인데 얕으면서 큰 것은 옹()이고, 창면이 깊으면서 모진 것은 저()다. 옹저는 화()의 사기(火邪)가 몸에 있기에 발생한다. 또 다른 합병증에는 망막증으로 인한 시력 약화와 시력상실이 있다. 세종이 부종과 안질환에 시달린 것은 소갈증의 악화로 볼 수도 있다.

소갈증이 있는 사람은 술과 과도한 부부생활, 짠 음식을 피하는 것이 좋다. 동의보감에는 소갈에 두루 쓰이는 약으로 자음양영탕(滋陰養榮湯), 매화탕(梅花湯), 황기탕(黃芪湯), 상백피탕(桑白皮湯), 위생천화원(衛生天花元) 등을 언급하고 있다. 많이 활용되는 약재로는 천화분, 복령, 지모, 작약, 맥문동, 갈근 등이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소갈증을 예방하고, 호전되기 위해서는 섭생(攝生)에 신경을 써야 한다. 섬유소를 풍부하게 섭취하고, 기름기 적은 저지방 식사, 적은 염분 식사, 단순 당 섭취 금지 등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육식을 꼭 삼가고 채식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종은 양고기 등의 식치(食治)로 소갈증을 호전시켰다. 세종은 소갈증이 생긴 지 수년 후에 닭, 꿩, 양고기 등의 음식으로 소갈증 치료를 했다.

"일찍이 신들에게 소갈을 멈출 약을 문의하라 명하셨사온데, 의원(醫員)은 말하기를, 마땅히 먼저 식물(食物)로 다스려야 할 것인데 흰 장닭(白雄鷄), 누른 암꿩(黃雌雉), 양고기(羊肉) 등은 모두 능히 갈증(渴症)을 멈춘다고 합니다. 하오며, 뒤를 잇기가 어려운 물건도 아닙니다. 닭은 인순부(仁順府) 인수부(仁壽府)와 내섬시(內贍寺) 예빈시(禮賓寺)에서 날마다 돌려가며 바치게 하고, 꿩은 응패(鷹牌)에게 날마다 사냥해 바치게 하고, 양은 5, 6일마다 한 마리를 바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찌 자봉(自奉)을 이같이 후히 하겠는가. 닭은 이어댈 수 없고, 꿩은 바치는 자가 있지만, 양은 본국에서 나는 물건이 아니니 더욱 먹을 순 없는 것이다." 하였다. 대언들이 또 아뢰기를,
"양이 많이 번식하고 있사오며, 또 약용이오니 우선 한 마리씩 바치게 하여 치료에 시험하시기를 청하옵니다." 해도, 오히려 허락하지 않는 것을 강권하니, 드디어 말하기를
"내 이를 시험하겠다. 그러나 다시 내 명령을 기다리라." 하였다.

- 세종실록 세종 13년(1431) 3월 26일 -

어의들은 병을 먼저 식치로 다스릴 것을 권하며 흰 수탉(白雄鷄), 누른 암꿩(黃雌雉), 양고기(羊肉)는 모두 갈증(渴症)을 멈추게 한다고 아뢴다. 이에 신하들은 임금에게 닭과 꿩은 매일, 양은 5, 6일에 한 번씩 섭생할 것을 요청하지만 왕은 백성의 노고를 이유로 거절하다가 약용을 전제로 수락한다.

식료찬요에는 소갈증의 치료법으로 "흰 수탉 한 마리를 푹 삶아서 오미(五味)를 양념하여 국이나 죽을 끓여서 먹는다"라고 하였고, "꿩 1마리를 잘게 썰어서 소금과 된장을 넣고 국을 끓여서 먹는다" 또 "양의 폐를 팥잎과 함께 삶아 먹는다"라는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동의보감에도 역시 "수탉을 잘 끓여 가라앉힌 후 맑게 뜨는 국물을 마시면 신효하다. 흰 수탉이 더 좋다"라고 하였다. 이로 보아 세종은 흰 수탉, 누런 암꿩, 양고기를 국이나 죽으로 복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하들이 이를 식치로 건의하고 허락받은 것이 세종 13년(1431)이고, 소갈증이 조금 나았다고 한 것이 21년(1439)이니 10년 가깝게 소갈증 식치를 실천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세종뿐만 아니라 소갈을 앓았던 대표적인 임금이 바로 인조이다. 승정원일기 인조 14년(1636) 5월 12일 "오랜 병 끝이라 재발할까 봐 실로 염려스러우니 소갈 예방을 위한 약재를 쓰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기록을 보면 소갈은 인조의 오랜 지병인 듯하다. 특히 인조 26년 (1648)에는 그 병이 더욱 심해졌는데 이때 약방에서 처방한 약이 바로 저두환(猪肚丸)이다. 승정원일기 인조 26년(1648) 11월 2일에는 약방제조들이 저두환은 소갈병만을 전적으로 치유하는 약재라고 말하며 이를 처방하고, 인조 27년(1649) 4월 14일에도 이를 올린다. 저두환은 저두(猪肚) 즉 '돼지의 위'를 환으로 만든 약으로, 동의보감에도 "저두는 물을 마신 후 바로 소변이 나오는 것을 멎게 한다. 푹 쪄서 생강, 식초를 넣어 먹는다"라고 하며 소갈병을 치료하는 식재료 중 하나로 기록하고 있다.

신의 평소 앓던 소갈병(消渴病)이 여러 달 동안 피로한 끝에 더 심해져서 셀 수 없이 물을 찾고 매우 자주 오줌을 누며 화열(火熱)이 위로 뻗치고 혈증 또한 심해져서, 정화(精華)는 나날이 메말라 가서 형체만 남아 있고 치아는 거의 다 빠져서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정(賑政)이 한창 바쁠 때인데도 제때에 응대하지 못할 때도 있고, 소송 문서가 구름처럼 쌓였는데도 여러 날 동안 정체되기도 하였으니, 결코 직임을 함부로 차지하여 직임을 방치하는 죄를 가중시켜서는 안 됩니다.
...(중략)...
신의 병 상태가 몹시 고질적임을 헤아리시어 속히 신을 파직하고, 이어 신의 죄를 다스리어 신하들을 면려하고 얼마 남지 않은 신의 목숨을 연장할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 승정원일기 영조 2년 (1726) 1월 9일 경상 감사 조영복(趙榮福)의 상소 -

주석
  • 1) 목덜미의 가운데 부분을 지나는 독맥경(督脈經)에 생기는 악성 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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