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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의 역사 - 저자. 설혜심 -
책소개
예법서와 에티켓북 100여 권을 분석해 재구성한 매너와 에티켓의 역사!
우리는 왜 지금 매너를 이야기하는가? 에드먼드 버크의 말처럼 매너는 마치 공기 같아서 그것이 부족해지기 전까지는 굳이 말로 꺼낼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매너의 역사』는 매너에 대한 사회적 갈증에 화답하듯 세세하고 구체적인 상황별로 그 답을 제시한다. 저자인 설혜심 교수는 에티켓북과 처세서, 행동지침서, 편지, 매뉴얼북 등 고대부터 20세기까지 생산된 100여 종의 굵직굵직한 예법서를 치밀하게 분석해 매너의 역사를 일별한다. 서양 매너의 이론을 정립한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부터 중세의 기사도, 에라스뮈스와 로크의 예절 교육, 18세기 영국식 매너와 젠틀맨다움을 거쳐 상류사회의 엄격하고 까다로운 에티켓으로의 퇴행과 개인화된 20세기 에티켓까지, 그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인류가 왜 매너를 발명해 냈고 그토록 오랜 시간 유지해 왔는지 깨닫게 된다. 시시콜콜하고 사소하게 여겨졌던 '매너의 역사'를 통해 무례함과 불관용의 시대를 넘어설 '품격' 있는 삶의 힌트를 제공한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20세기 섹스 에티켓까지, 품격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한 '매너'의 모든 것에 대해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는 『매너의 역사』는 매너에 관한 최고의 고전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 이후 가장 주목해야 할 저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껏 역사책에서 본 적 없는 주제로 우리를 새로운 역사의 세계로 이끄는 흥미진진하고도 품격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가이드북! 바로 『매너의 역사』이다.
책 속으로
P.59 「2장. 서양 매너의 이론적 시원」 중에서
그리스 시대에는 예절이 계급을 구분하는 수단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매너는 단지 덕을 갖춘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인간을 구별할 수 있는 표지였다. 하지만 이후 서양의 역사에서 매너는 계급적 구별 짓기의 강력한 수단으로 등장한다. 그 시작은 키케로였다.
P.234 「10장. 영국적 매너의 핵심」 중에서
나는 바로 이 지점, 즉 프랑스 매너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나타나는 영국식 매너의 성격 규정이 매너의 역사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분기점을 형성한다고 본다. 이 지점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가 놓친 부분이며, 그런 탓에 그의 《문명화 과정》은 18세기 이후 매너의 영국화 과정 및 범세계로의 전파라는 중요한 과정을 다루지 못했다. 그리고 그 분기점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영국 신사' 같은 개념이 생겨나고 퍼져가기 시작한 시작점이기도 했다.
P.350 「16장. 에티켓북의 유행」 중에서
나는 영국 공론장이 쇠퇴하는 시점이 하버마스가 주장한 19세기 말보다 훨씬 일찍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9세기 중엽부터 불어닥친 에티켓북의 인기야말로 그런 현상을 증명한다고 믿는다. 특히 변화한 공론장이 "'인간적 흥미'를 목적으로 하는 오락과 '생활 상담'으로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광고의 기능을 맡으며, 전체적으로 더욱 비정치적이 되며, 가상적으로 사사로운 것이 된다"는 하버마스의 지적은 에티켓북의 특성과 딱 들어맞는다.
P.382 「18장. 왕실의 존재감」 중에서
상류층을 향한 사회적 모방(social emulation) 심리가 팽배했다는 것은 중간계급이 아직 사회·경제적 변화에 걸맞은 '문화적 행위주체성(agency)'을 갖추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그런 탓에 대다수가 익명이었던 에티켓북은 종종 저자가 귀족 신분임을 내세웠다. 하지만 진짜 귀족이라면 그런 책을 쓰지도, 이름을 빌려주지도 않을 터였다. 실제로 그런 책의 저자들은 댄스 교사나 주식 중매인, 상류층의 하녀 등으로 '세상사에 능통한 이(a Man of the World)', '영국 귀족 여성(an English Lady of Rank)', '귀족의 일원(a Member of the Aristocracy)' 같은 모호한 필명 뒤에 숨어 있었다.
P.426 「19장. 쇼핑 에티켓」 중에서
비튼은 이런 남성들을 "단언컨대 배워먹지 못한 자들"이라고 부른다. 바깥에서는 막대기로 맞을까 봐 두려워서 절대로 하지 못할 말들을 상점에 들어와서는 어린 직원에게 지껄이고, 자기가 그녀들에게 엄청나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심지어 자기에게 반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아주 날카롭고도 시원한 일갈을 날린다. 그들이 만약 "자신들이 경탄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주변을 제외한 모두에게서 동정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묻고는 "시시한 바보들"이라고 끝맺는다.
P.589 「26장. 지극히 개인적인 에티켓들」 중에서
장구한 매너의 역사를 돌아보면, 오늘날 에티켓 규칙들은 훨씬 단순해졌다. 하지만 그 원론적인 규범들은 여전히 중요하며, 수많은 사람과 교류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더욱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계급 같은 전통적인 구분이 아닌 오로지 개인의 행동에 의해 사회적 지위를 가늠하는 현상이 자리를 잡게 되었고, 사회 엘리트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모두에게 적용되므로 매너의 의미와 역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 측면이 있다. 따라서 예의 바름과 품격으로 사람을 구별 짓는 가치와 효용은 여전하며, 그것은 계급의 울타리를 벗어나 온전히 개인이 책임지고 수행해야 하는 영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