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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세종실록으로 읽는 왕실의학(42) 세종과 어의 전순의, 식치음식 구선왕도고(九仙王道糕)

임금이 금성대군(錦城大君)의 병이 나은 것을 기뻐하여 시병한 환관 최습(崔濕)에게 말 한 필과 밭 5결()을 주고, 김충(金忠)·김연(金衍)·전균(田畇)에게 각각 한 등급을 가하고 밭 5결을 주고 이해(李海)의 관직을 가하고, 또 의원 노중례(盧重禮)에게 안구마(鞍具馬) 한 필과 밭 5결을 주고, 배상문(裴尙文)에게 한 등급을 더하고 말 한 필과 밭 5결을 주고, 양홍수(楊弘遂)·전인귀(全仁貴)·전순의(全循義)·김지(金智)에게 각각 옷 한 벌을 주고, 박연생(朴延生)은 한 등급을 뛰었는데 연생은 대군(大君) 유모의 남편이었다. 중례의 조카 노고헌(盧高憲)도 역시 한 등급을 더하였다.

- 세종실록 세종 22년(1440) 6월 21일 -

세종 시대, 어의 중 한 명이 바로 전순의(全循義)이다. 세종·문종·세조의 3조()에 걸쳐 전의감(典醫監)의 의관을 지냈다. 1445년(세종 27년) 왕명에 따라 의방유취(醫方類聚)(365권)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음식으로 병을 치료한다는 정신을 담은 식료찬요의 저자이기도 하다. 식료찬요는 1460년(세조 4년)에 편찬된 조선전기 식치 의학을 종합한 책으로 후에 동의보감의 양생론에도 영향을 준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음식이 으뜸이고 약물이 다음이다. 시기에 맞추어 바람과 추위와 더위와 습기(風寒暑濕)를 막아주고, 음식과 남녀관계를 절제한다면 무슨 이유로 병이 생기겠는가? …(중략)… 옛 선조들이 처방을 내리는 데 먼저 음식으로 치료[食療]하고, 음식으로 치료가 되지 않으면 약으로 치료한다고 했으니, 음식의 효능이 약의 절반이 넘는다 하겠다. 또한 병을 치료하는 데 당연히 오곡(五穀), 오육(五肉), 오과(五果), 오채(五菜)로 해야지, 어찌 마른풀과 죽은 뿌리에 치료법이 있겠는가? 이것이 고인이 병을 치료하는 데 음식으로 한 이유다.”

- 식료찬요 서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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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비위가 약해졌을 때, 산약(山藥)을 잘게 잘라 반은 은으로 만든 기와나 무쇠로 만든 작은 솥에 넣고 볶아 익힌 다음 반은 날로 섞어 서로 분말을 만들고, 싸라기와 같은 분량으로 나눈다. 먼저 싸라기를 삶아 익기를 기다려 산약 분말을 넣고 다시 삶아 익힌 후 공복에 먹는다."라고 하였다.

스트레스와 운동 부족 등으로 비만, 신경통, 관절염, 안질, 당뇨 등 많은 질병을 지니고 있었던 세종 역시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산약을 재료로 한 음식을 복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구선왕도고'는 아니더라도 세종실록에는 이러한 정황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세종 15년(1433) 4월 세종은 온천을 위해 온양으로 와 있었는데, 바로 같은 달 14일에 아산현에 사는 94세 되는 늙은 여인이 마떡(薯藇餠) 한 동이를 올리니, 음식을 대접하고 면포 두 필, 술 열병과 잡물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임금에게 올릴 음식이니 아무 음식을 만들어 진어했을 리 만무하다. 응당 임금이 평소 즐겼고 좋아하던 음식을 만들어 올렸을 것이다. 바로 이를 통해 세종이 평소에도 '마떡'을 즐겼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산약을 서여(薯蕷), 산우(山芋), 옥연(玉延)이라고도 하며, 송나라 때 황제의 이름을 피해 산약이라 부르게 되었다.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고, 허로로 야윈 것을 보하고, 오장을 채우며, 기력을 더해주고 살찌우며, 근골을 튼튼하게 하고, 심규를 열어서 정신을 안정시키며 의지를 강하게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산약은 소화 기능을 촉진하고 기()와 진액을 보충하며, 체력보강, 폐()와 신장(腎臟) 기능개선 등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단백질과 무기 성분이 많은 알칼리성 식품으로 예부터 한약재나 구황식품으로 활용됐다.

그리고 산약은 조선 시대에는 왕실의 식치 음식인 '구선왕도고(九仙王道糕)'의 재료로 활용되었다. 동의보감은 '구선왕도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정신을 기르고 원기를 도우며, 비위를 튼튼하게 하고 밥맛을 좋게 하며, 허손을 보하고 기육이 생기게 하며, 습열을 제거한다.
연육, 산약(볶는다), 백복령, 의이인(薏苡仁:율무) 각 4냥, 맥아(볶는다), 백편두(볶는다), 검실 각 2냥, 시상(柿霜:곶감에 묻은 흰 가루) 1냥, 설탕 20냥. 이 약들을 곱게 가루 내고, 여기에 멥쌀가루 5되를 넣고 쪄서 떡을 만들어 볕에 말린다. 임의로 미음에 먹는다.

역시 의림촬요에서도 "정()을 기르고, 원기를 도와 비위를 튼튼하게 한다. 음식을 당기게 하고, 허손을 보하고, 새살이 돋게 하고, 습열을 제거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구선왕도고는 왕이 즐겨 먹는 간식이었는데, 승정원일기 인조 4년(1626) 8월 5일 기록을 보면 비장(脾臟)과 위장을 조화롭게 하고 원기회복을 돕기 위해 약과 함께 구선왕도고를 지어 올렸다고 한다. 또, 인조 10년(1632) 8월 8일에도 국상으로 하루에 다섯 차례나 곡을 하자 임금의 몸을 생각해 기력을 보양하는 약과 함께 구선왕도고를 먹을 것을 청한다. 물론 인조는 병이 없으니 염려하지 말라며 이를 올리지 말라 이른다.

그리고 윤증(尹拯:1629~1714)의 명재유고(明齋遺稿)에는 숙종 32년(1706) 7월 그가 학질을 앓자 8월에 이르러 왕은 직접 어의를 보내 그를 돌보게 했는데 9월 어의가 약은 구선왕도고를 써야 한다고 서계하자 인삼 1근과 함께 그것을 보내라고 명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구선왕도고는 조선 중후기 이르면 왕실에서 일반화되고, 대신에게도 치료용으로도 하사된 음식이자 약이었다.

19세기 지방의 의원으로 활동하던 장태경(張泰慶:1809~1887)이 자신의 의학적 경험담을 모아 우잠잡저(愚岑雜著)에는 "살이 너무 빠져 마침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였기에 계속해서 삼령백출산(蔘苓白朮散)과 구선왕도고를 한 달 남짓 사이사이에 복용시켰더니 평소대로 회복하였다."라고 하였다. 요즘에는 건강한 다이어트를 위한 식사 대신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구선왕도고의 주요 약재인 산약은 세종실록 지리지에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황해도의 12개 군현의 토산품으로 기록되어 있고, 서여는 평안도의 토산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세종실록 세종 11년(1429) 12월 3일에는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기록이 남아 있다.

통신사 박서생(朴瑞生)이 시행할 만한 일들을 갖추어 아뢰기를
...(중략)...
사역원(司譯院) 생도(生徒) 이생(李生)이 말하기를, '감자(甘蔗)는 맛이 달고 좋아서 생으로 먹어도 사람의 기갈(飢渴)을 해소하게 되고, 또 삶으면 사탕(沙糖)이 되는데, 유구국(琉球國)에서는 강남(江南)에서 얻어다가 많이 이를 심고 있으며, 또 서여(薯藇)가 있어, 큰 것은 기둥만 하고 작은 것은 서까래만 한데, 역시 남만(南蠻)에서 얻어다가 이를 재배한다.' 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모두 채취해 오게 하여 그 재배를 널리 보급하도록 하소서.

세종 시절 통신사(通信使) 박서생이 유구국을 방문하고 보고한 내용으로, 그는 그곳에는 남만에서 얻은 서여가 큰 것은 기둥만 하고 작은 것은 서까래만 하니 이를 채취해 오게 하여 재배를 널리 보급하도록 청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크고 좋은 마가 감자와 함께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볼 때, 조선 시대 마는 일반 백성들에게 중요한 구황작물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단방비요경험(單方祕要經驗) 신편(新編)에는 "조병(燥病)에는 산약을 갈아 죽을 쑤어 먹는다."라고 하였는데 조병은 건조함이 원인으로 혈이 적어져 생기는 병으로 손바닥이 터지거나 피부가 거칠어지면서 가렵고 목이나 코가 마르고, 변비나 설사 등이 증상으로 나타난다. 이 조병(燥病)을 알았던 대표적 임금이 바로 인조였다. 승정원일기 인조 10년(1632) 6월 8일에 설사 증세가 있자 산약죽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21년(1643) 9월 4일에도 설사의 빈도와 횟수를 물으며 산약죽을 올렸다고 한다.

산약(山藥)
서여가 산골짜기서 자라니 (薯蕷生山谷)
긴 뿌리가 정말 기이하여라 (長根異且奇)
땅을 파서 금빛 줄기 뽑고 (掘地抽金柱)
쟁반에 올릴 땐 흰 살을 깎지 (登盤削玉肌)
삶아서 늙은이 배를 채우고 (融烝充老腹)
죽을 끓여 허약한 기운 돕는다. (乾粥補虛羸)
장복하면 몸이 가볍고 건강하다니 (久服身輕健)
신선이 어찌 나를 속였으랴 (癯仙豈我欺)

- 이응희(李應禧:1579~1651) 옥담시집(玉潭詩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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